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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 ZEB 의무화 ‘허들넘기’

ZEB설계, 건축단가 최대 30%↑…양산시장 관건
값싼 산업·일반용 전기요금, ZEB 유인 ‘발목’
녹색건축 관련 제도·절차 난립…행정소요 과중


미국이 파리기후협약에서 이탈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세계 ZEB(제로에너지빌딩) 시장은 건재할 전망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온실가스 저감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내고는 있지만 국내외 비난 여론을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실제로 트럼프 정부는 기후변화 관련 재정지원 중단을 선언한 가운데서도 재생에너지·ESS 등에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유럽을 필두로 한 세계 각국도 ZEB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스웨덴은 204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0으로 하겠다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감축안을 발표했다.


우리나라도 ZEB분야에서만큼은 비전과 로드맵을 갖고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당장 올해부터 한국전력 등 시장형 공공기관의 ZEB화를 추진하고 있고 2020년에는 전체 공공기관에 ZEB 의무를 부여할 전망이다.


2025년부터 신축되는 일부 민간 건물에 제로에너지건축물인증제(이하 제로인증제) 의무를 부여하기로 하고 2030년에는 민간 신축건물 전면의무화를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2030년 신축건물 전면의무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 ZEB관련 정책을 살펴보고 그 장애물과 해결방안을 짚어봤다.


ZEB 결승점은 어디?

시간상으로는 2030년, 기준상으로는 ‘민간신축 전면의무화’가 결승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ZEB는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달성을 위해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따라 2030년까지 온실가스배출전망치(BAU)대비 37%를 감축하기로 했고 이 중 25.7%를 국내에서 감축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에너지사용을 줄이는 것이 중요한데 건축물은 국가 총 에너지소비량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ZEB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크다.


정부는 민간으로의 의무화 과정에서 예상되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2025년 소규모 민간 신축건물에 우선적으로 ZEB를 의무화할 방침이다. 이후 2030년부터 는 전체 신축건물에 적용한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국토부는 2025년 신축건물 50%만 ZEB로 지어도 연간 260만톤의 온실가스가 감축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를 위해 당장 2017년부터 한국전력 등 시장형 공기업에 신축건물 제로인증제를 의무화한다. 또한 2020년부터는 공공기관 의무화가 시작된다. 국토부가 시장형 공기업에 먼저 의무를 부여한 것은 사업초기 투자비용, 시장 미성숙 등을 고려해서다. 시범사업이 성공모델을 찾고 발생할지 모를 문제를 탐색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한다면 공기업·공공부문 의무화는 수요를 만들어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방법이다.


이를 통해 시장이 성숙해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되면 2030년 정도에는 민간신축 전면의무화라는 결승점을 통과할 수 있다고 예측하고 있다.


ZEB 사업 견인차는 제로인증제

ZEB의 견인차 역할을 할 제로인증제는 지난 1월 시행됐다. 정부 로드맵에 따라 산업부에서는 우선 3,000m² 이상의 시장형 공기업 신축 및 증·개축 건물이 의무적으로 받도록 관련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제로인증제는 사실상 에너지효율 상위 5%를 대상으로 한다. 건축물에너지효율등급 1++등급에 속해 있어야 인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속한 건축물 중에서 BEMS를 구축하고 있거나 원격검침전자식계량기를 설치했다면 심사를 받을 수 있다.


심사대상이 신재생에너지로 건축물 에너지의 20% 이상 40% 미만을 생산한다면 ZEB5등급을 받게 된다. 100% 이상 생산하면 최고등급인 ZEB1을 획득할 수 있다.


정부는 제로인증제 대상을 향후 건축물에너지효율 상위 75%까지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현재로서는 NZEB(Net ZEB)**는 고사하고 nZEB(nearly ZEB)*** 수준이라도 노려볼 수 있는 대상이 5% 밖에 안 된다.


그러나 2025년 무렵에는 건축물 전체적으로 효율이 상향평준화돼 대상이 많아져 75%도 가능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허들 하나. 건축단가

2030년 민간신축건물 ZEB 의무화까지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적지 않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건축단가다. 지금 업체·가정 등에서 ZEB 건축을 고민하는 이유는 일반 건축대비 단위 면적당 단가가 최대 30%까지 높아지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용적률, 취득세, 보조금 등으로 인센티브를 지원하고 있지만 일반건축보다 더 드는 비용을 완전히 메꿔주지는 못하고 있다.


현행 인센티브는 △ZEB1 기준 건축기준 15% 완화 △신재생에너지 설치비 30~50% 지원 △ZEB 주택 분양 시 대출한도 20% 상향 △기반시설 기부채납 최대 15% 경감 △에너지절약시설 투자비용 최대 6% 소득세 또는 법인세 공제 등이 있다.


이와 관련 에너지공단의 관계자는 “인센티브로 일반건축에 비해 단가가 낮아진다면 앞다퉈 ZEB로 지을 것”이라며 “보급 확산이 안 되는 이유는 양산시장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양산시장이 조성돼야 건축단가가 낮아져 진입장벽이 허물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ZEB를 실현할 수 있는 기술은 다 나온 상태다. 에어로젤, 진공유리 등 패시브 요소부터 지열히트펌프 등 고효율냉난방기기, BEMS 등 관리체계도 개발돼있다. 문제는 이것들을 모두 적용하면 단가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에너지공단은 보급형 ZEB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 ‘제로에너지건축물 융합 얼라이언스’를 출범시켜 2월 말 기준 최종보고서를 준비하고 있다.


또한 2월 중 ‘건축설계사 서포터즈’를 운영함으로써 보급형 ZEB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설계하면 좋은지 실제 건축현장에 적용가능한 솔루션 마련을 추진한다.


보다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수요가 많아져야 한다. 그래야 기술개발, 대량생산 등으로 단가가 떨어져 시장이 성숙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정부 정책방향은 어느 정도 핵심에 근접하고 있다. 공기업, 공공기관에 ZEB 의무를 부여해 초기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관건은 규모다. 국토부의 관계자는 “올해 공공부문에서 10건의 ZEB 건축이 예정돼 최소 500억원의 시장이 창출될 전망”이라며 “내년, 내후년에는 20~30곳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어서 해마다 몇 배씩 성장하게 된다”고 내다봤다.


우리나라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ZEB 수요가 향후 시장을 성숙시킬 마중물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허들 둘. 전기요금

두 번째 장애물은 전기요금이다. 에너지절감률이 크더라도 그만큼 비용절감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문제다. 산업용, 일반용 전기요금이 저렴해 에너지를 많이 절감해 봤자 절약하는 비용이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자주 찾는 에너지통계 2016’과 ‘2016 에너지통계연보’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 산업용 전기요금은 당시 환율 기준으로 kWh당 0.091달러다. 호주와 슬로베니아를 제외한 OECD 32개 회원국 가운데 20위로 간신히 중위권에 턱걸이 한 수준이다.


일본이 0.162달러로 3위, 독일이 0.145달러로 4위다. 세계 ZEB 시장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유럽, 일본 등이 상위권을 달리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만약 단가가 높아 당장 시공 상 어려움이 있더라도 준공 후 운영과정에서 비용을 회수할 수 있다면 수요는 창출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전기요금 구조에서는 이런 차원의 수요가 창출되기 어렵다.


에경연은 통계연보에서 2015년 산업용 전기요금을 kWh당 107.4원으로 밝히고 있다. 이를 기준으로 월 5,000kWh를 사용하는 업체를 가정해 보면 이 업체는 월평균 53만7,000원을 내게 된다. ZEB로 지어서 이 금액이 0이 된다 하더라도 연간 640여만원을 절감하는 데 그친다.


이곳이 건축하는 데 10억원이 소요되는 건축물이라고 가정하면 ZEB로 짓는 데 추가로 소요되는 3억원을 회수하기 위해 무려 47년이 소요된다. 비용절감 측면에서 전혀 이점이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산업용 전기요금 현실화는 경제성장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것과 다른 산업에서의 반발이 크다는 이유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


산업부는 지난해 “산업용 전기요금을 인상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밝혔고 전경련도 “2000년 이후 산업용 전기요금이 84.2% 인상 됐다”며 추가 인상에 반대하고 있다.


허들 셋. 행정절차

앞선 두 문제가 해결된 후 제기될 수 있는 문제는 행정절차의 편의성이다. 로드맵에 따라 ZEB 의무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규제가 동반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문제는 각종 규제에 따라 건축현장에서 이행해야 할 행정절차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기존 일반 건축물 인허가에 더해 ZEB관련 인증제가 속속 등장하고 있어 일선에서는 수수료는 차치하고서라도 늘어나는 행정부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30년 0월0일, 민간인인 A씨는 건물을 지으려고 한다. 우선 250mm 진공단열, LED, 태양광, 지열히트펌프 등을 설치해 패시브 설계와 신재생에너지 기준을 준수하는 것으로 설계를 마쳤다. 이제 일반적인 건축물 인허가 관련 행정절차와 함께 ZEB관련 행정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ZEB관련 절차를 이행하기 위해 우선 건축물에너지효율등급 예비인증을 받았다. 이를 통해 건축물에너지소요량 평가서 작성을 대체했다.


에너지소요량 평가서는 2017년 6월 시행된 건축물에너지소비총량제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제출해야 하는 것으로 에너지효율 예비인증을 받으면 면제해 준다.


이제 건축물에너지절약계획서를 작성해야 한다. 절약계획서는 의무사항과 에너지성능지표 2종을 작성해야 한다. 그나마 성능지표는 에너지총량제를 마무리하면 면제를 해 줘 다행이다. 그러나 의무사항은 또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 건축부문에서 단열·방풍·창호 등, 기계부문에서 펌프, 덕트 등, 전기부문에서 변압기·콘덴서·조명·BEMS 등의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제로에너지건축물인증을 받아야 해 신청서를 내고 인증기관으로부터 평가를 받은 뒤 몇 단계의 절차를 거쳐 인증을 취득했다.


기왕 ZEB로 지은 건축물이니 녹색건축물인증(G-SEED)도 받을까 했지만 선택사항이니 만큼 행정절차에 지쳐 그만두기로 했다.


ZEB 관련 제도만 하더라도 △건축물에너지효율등급 예비인증 및 본인증 △건축물에너지소비총량제 △건축물에너지절약계획서 제출 △제로에너지건축물인증 △녹색건축물인증 예비인증 및 본인증 등 매우 많고 이를 이행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제도가 몇 가지 추가된다.


국토부의 관계자는 “규제, 인증제가 많아 행정절차의 복잡성이 크다는 인식에 분명히 공감한다”라며 “‘Post 2020 온실가스 로드맵’에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대한 국민들의 피로도를 낮추고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규제완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규제완화, 행정절차 간소화를 위해 평가지표를 비교해서 불필요한 제도는 통합하고 절차를 생략하는 방향으로 개선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ZEB 활성화를 위해서는 건축현장의 ‘손톱 밑 가시’ 규제를 제거할 필요가 있다. 국토부가 염두에 두고 있는 개선방안이 현장에서 공감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 주목된다.



제로에너지건축, 자생력이 관건

모든 문제는 결국 제로에너지건축의 자생력으로 귀결된다. 양산시장을 통한 비용절감, 전기요금을 통한 유인효과, 규제완화를 통한 행정편의 등 모두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시장에 뛰어들도록 만들기 위한 방안이다.


인센티브, 보조금 등 정책적 지원은 무한히, 영원히 계속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시장에서 자발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ZEB가 건축주 및 사업자에게 실리를 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ZEB산업측면에서 정부가 비전을 세우고 관심 있게 추진하는 점은 반갑다. 그러나 까다로운 장애물이 많은 만큼 앞으로 얼마나 역량을 집중하고 자원·예산을 투입해 추진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ZEB는 지구온난화 완화, 지속가능 개발이라는 대의도 있고 2030년 117조원 시장으로 성장할 전망이어서 실리도 크다. 저성장 시대에 미래 먹거리를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추진이 필요하다.


*에너지자립률: 단위 면적당 1차에너지 소비량에 대한 1차에너지 생산량을 백분율로 나타낸 값


**NZEB(Net Zero Energy Building): 건축물이 소비하는 에너지와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 등으로 자체 생산하는 에너지 합이 0인 건축물


***nZEB(nearly Zero Energy Building): 비용과 현실성 등을 고려해 건축물이 생산·소비하는 에너지가 0은 아니더라도 이에 근접하도록 만드는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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