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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MS 옥죄는 ‘DDC 족쇄’

자동제어 보급 미흡…고비용 BEMS ‘문제’
기술개발 막는 폐쇄적 DDC구조 개선필요
국토부, 개방형 플랫폼 올해 내 개발 추진


‘BEMS를 도입했으니 에너지가 절감되겠지’라는 생각은 틀렸다. 건축물의 에너지효율을 높이기 위해 설치하는 것이 BEMS(Building Energy Management System)지만 도입 자체만으로는 건축물 에너지효율을 높일 수 없다. 현재 상용되고 있는 BEMS는 의사결정을 도와줄 뿐이고 이를 토대로 에너지를 절감하는 조치가 반드시 뒤따라야만 한다.


원인은 자동제어가 안 되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 BEMS가 데이터를 토대로 최적운용효율을 낼 수 있게 기기를 스스로 제어하는 시스템 보급은 제한적이다. 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 절감을 위한 제어는 사람이 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일부 학계와 업계에서는 ‘본질적으로 BEMS와 BAS(Building Automation System)는 같다’는 지적도 나온다. BEMS가 건축물 안에서 에너지 사용현황·효율을 파악하고 최적시스템을 제안해도 이를 운용하는 것은 결국 관리자의 몫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관련 기술개발이 활성화돼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산업구조는 이를 가로막고 있다. BEMS 생태계가 강자 중심으로 폐쇄돼 있어 소비자의 욕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지만 당장 시행되고 있는 의무화제도로는 이를 해결하기 어렵다.


세계적인 시장분석기관 네비간트 리서치(Navigant Research)에 따르면 세계 BEMS시장은 2016년 2억8,000만달러에서 2024년 10억8,000만달러로 연간 10.5%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는 세계시장 진출은 물론이고 국내 시장확대도 제한적이다. 현재 우리나라 BEMS산업 실태를 점검해보고 시장확산과 보급을 저해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건을 분석해봤다.


BEMS확산, 자동제어가 필수
자동제어 BEMS가 상용화·보급화된다면 획기적인 비용절감이 가능하다. 자동제어 BEMS는 데이터를 시스템이 자체적으로 수집해 설비를 제어하기 때문에 관제실 같은 거대한 모니터링 시스템이 필요없고 인력이 상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상용화되고 있는 BEMS를 이용해서 에너지절감, 효율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문가가 필요하다. BEMS가 데이터를 수집하고 그래프나 도표로 시각화해 제시하면 이를 해석·판단해서 각 기기에 명령을 내리는 관리자가 반드시 관제실 등에 위치해야 한다.


바로 이 점이 BEMS시장 확대를 막고 있는 비용문제·경제성의 핵심이다. BEMS 관제실을 설치하는 비용도 비싸지만 각종 그래프와 도표, 수식을 해석할 수 있을 정도의 전문가를 고용해야 한다면 고액의 인건비지출을 피할 수 없다. 현재 BEMS가 대형건물 위주로 도입된 이유다.


BEMS시장을 확대하고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소형 건축물로의 확산이 필수적이다. 이를 막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비용적 측면이다. 중소형 건축물 소유주 입장에서 비싼 설치비용은 차치하더라도 건물에너지를 관리할 전문가를 고용해 유지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실제로 한 BEMS 업체의 관계자는 “BEMS를 설치하고서도 비전문가인 외주·파견업체 건물관리인에게 일임해 절감효과가 제한적이다”이라고 밝혔다.




기술개발 활성화 막는 산업구조
사실 지금도 자동제어가 가능한 다양한 소프트웨어들이 개발돼 있다. 그러나 쉽게 유통되지 못하는 이유는 산업 구조적으로 새로운 소프트웨어들이 시장에 진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핵심에는 DDC(Direct Digital Control)가 있다. DDC는 디지털신호를 아날로그신호로, 아날로그신호를 디지털신호로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 사용자가 소프트웨어에 설정값을 입력하면 DDC는 이를 전압이나 공기압 신호로 변환해 각 설비·기기를 제어한다. DDC가 없이는 BEMS가 구현될 수 없고 DDC에 어떤 소프트웨어가 들어가느냐에 따라 BEMS의 성능이 가름된다.


문제는 DDC의 폐쇄성이다. DDC는 블랙박스와 같아서 개발사가 아니고서는 접근권한이 없다. 여기에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탑재하기 위해서는 개발사가 해당 소프트웨어를 받아들이고 적용해 줘야 한다.


그러나 현재 DDC를 생산해 BEMS 유통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국내외 업체들은 새 소프트웨어를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니웰, 지멘스, 슈나이더 등 유수의 국외업체나 나라컨트롤 등 국내업체들은 DDC와 함께 자체 소프트웨어도 보유하고 있다. 최대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생리상 자사 소프트웨어를 탑재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어서 현재 구조에서 이를 타개하기는 어렵다.


폐쇄적 산업구조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DDC에 종속되는 BEMS 특성상 모듈서비스 등 소프트웨어는 물론 디바이스 등 하드웨어도 진입이 자유롭지 않다. 사실상 DDC 폐쇄구조 안에 진입하느냐가 업체 입장에서는 수익을 내는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이 때문에 다양한 소비자의 욕구를 반영하기 위한 혁신적 제품개발에 집중하는 것보다 DDC생산자의 눈치를 봐야만 하는 실정이다. 소비자를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적용된 제품을 출시하더라도 여기에 진입하지 못하면 사장되거나 유통망을 새로 구축해야 한다.


주먹구구식 정부정책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수요를 늘린다며 대형 건축물 BEMS 의무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공공기관 에너지이용합리화 추진에 관한 규정’을 올해 1월1일부로 개정시행했다. 고시에 따르면 연면적 1만m² 이상의 건축물을 신축하거나 별동으로 증축하는 경우에는 BEMS를 구축·운영해야 한다.


이 같은 제도는 당장 BEMS 수요를 늘릴 수는 있을 전망이다. 산업부는 실제로 이와 같은 조치로 연간 2,200억원의 수요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산업구조에서 의무화를 통한 시장확대는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수요가 대형건축물 위주로 발생해 기존과 같이 대형관제실을 구축하고 고도의 전문가를 상주시키는 고비용 구조의 BEMS라는 것이다.


건축물 규모가 커서 에너지절감 효과는 나오겠지만 중소형 건물로의 확산을 저해하는 구조는 타개하지 못한다. 결국 공고한 유통망을 구축한 DDC 생산업체의 수익성은 더 개선되고 폐쇄적 DDC에 종속된 중소 소프트웨어·하드웨어업체의 성장은 여전히 어렵다.


현재 폐쇄적 DDC에 종속되는 구조에서는 파이의 대부분을 DDC 생산업체가 가져간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BEMS시장은 연간 1,000억여원으로 추산되는데 이 중 중소형 BEMS업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10%남짓이다.


바람직한 모델은 업계 전반적으로 수익이 분산되는 구조다. 기술력 있는 중소업체들이 탄탄한 산업기반을 구축해 보급화를 담당하고 선두기업은 혁신적인 기술개발로 고급화해 세계적 경쟁력을 갖는 것이다.


연간 2,200억원의 새로운 수요가 업계 전반으로 흐르지 못하고 일부 선두 대기업이 독식해서는 BEMS확산을 바라보기 어렵다. 의무화의 선결조건은 건강한 생태계 조성이다.


새로운 생태계 필요
기술개발을 활성화하고 소비자를 위한 제품이 합리적인 비용으로 공급되기 위해서는 개방형 산업구조가 필요하다. 지금 확고한 유통망을 구축하고 있는 DDC생산 기업들은 가장 앞선 기술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현재 생태계에서 높은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기술개발을 하고는 있지만 시장요구에 충분히 대응할 정도로 적극적이지 않다.


국내 700만동이 넘는 건물마다 환경조건, 용도, 특성이 제각각인데 여기에 최적화된 소프트웨어나 알고리즘, 디바이스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건축주 등 소비자가 개발비용과 커스터마이징 비용을 모두 부담해야 한다.


소비자가 적은 비용으로 자신의 건물에 최적화된 소프트웨어와 디바이스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중소 BEMS 개발업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태원 건설기술연구소 박사는 “중소형 건축물에는 대형 건축물처럼 무겁고 복잡하고 거대한 알고리즘이나 디바이스가 필요치 않다”고 지적한다.


간단한 알고리즘을 사용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들이 DDC에 자유롭게 진입할 수 있다면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일반 소비자들도 BEMS의 효용을 누릴 수 있다.


또한 이런 형태로 중소기업이 제품을 유통시킬 수 있는 구조가 되면 인력공급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수익성이 개선돼 중소기업이 성장하면 일자리가 늘어나고 인력에 대한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근로자에 대한 급여 등 처우가 개선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신규 전문인력의 유인효과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개방형 플랫폼 개발 추진
국토교통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BEMS KS 기반의 설계·시공·운영·관리 기술개발 및 실증’ 연구과제를 시행 중이다.


2015년 시작된 이번 연구과제는 3차연도에 접어들었다. 첫 해에 상용화를 전제로 개방형 BEMS 운영체계의 아키텍처 설계가 됐고 2차연도에 기본모듈과 참조모델이 개발됐다. 올해 말까지는 라이브러리를 구축해 개방형 플랫폼이 실제 이용 가능한 수준까지 개발될 전망이다.




1세부과제는 ‘BEMS활성화를 위한 기반구축 연구’로 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이 총괄하며 지침, 규격, 표준모델 등을 개발한다. 구체적으로는 △개방형 BEMS 운영체계 구축 △BEMS 표준화 개발 △실시간 진단알고리즘 개발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연계 가시화도구 개발 △건물 전주기적 지원체계 구축 등이 연구되고 있다.


연구의 핵심은 개방형 BEMS 운영체계구축이다. 일종의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으로 BEMS에 대한 표준(KS)을 만들고 호환 가능한 프로토콜을 개발해 공유하겠다는 것이다. KS와 공유된 프로토콜을 사용하게 되면 누구나 DDC에 접속해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다.


또한 플랫폼에는 디바이스(HW)와 모듈서비스(SW) ‘라이브러리(Library)’가 구축될 전망이다. 이는 스마트폰의 안드로이드 ‘앱스토어’와 유사한 개념이다. 각 업체가 생산한 제품과 서비스가 등록되고 소비자나 컨설턴트들이 접속해 열람할 수 있다. 자신이나 고객에게 적합한 솔루션을 다양한 조합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좋은 제품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제품은 뒤처지는데 이 경우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위한 기술개발은 더 확산될 전망이다.



개방형 플랫폼이 상용화된 후에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고도의 전문가가 아니어도 BEMS를 운용할 수 있는가다. 실시간 진단알고리즘, BIM연계 가시화도구 개발을 추진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실제로 HVAC(Heating, Ventilating, Air Conditioning) 시스템 이상 발생 시 연간 에너지사용량이 15~30% 더 늘어난다. 그럼에도 종합적 운영체계에 대한 사용자 및 관리자의 이해가 떨어져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실시간 진단알고리즘은 각종 설비 및 시스템의 운전상태를 감시하고 성능분석과 고장진단을 내린다. 하나의 플랫폼을 이용하기 때문에 모든 기능이 동시에 수행되며 고장을 신속하게 감지하고 적절한 처리방법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비전문가의 접근성이 향상된다.


또한 현재 BEMS는 이미지, 그래프, 텍스트 중심으로 표현돼 상황에 따라 유연한 대처가 어려웠다. BIM은 건축물을 3차원 그래픽으로 구현해 시설물의 모든 정보와 속성을 시각화 하는 개념이다. 이와 연계한 가시화도구 개발로 BEMS설계와 운영업무를 지원하는 인터페이스를 제공해 사용자의 업무효율을 높이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지원한다.


2세부과제는 ‘BEMS 핵심 운영관리 기술 개발’로 나라컨트롤이 총괄한다. △복합운영관리 및 제어기술 △중앙공조시스템 최적제어기술 △개별분산 공조시스템 최적제어기술 △전력수요 평준화 및 관리기술 △전력수요관리 운영·지원시스템 △신재생에너지 관리·진단기술 △에너지소비 분석·진단기술 등 7가지 부문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융합형 전문가 양성해야
올해 말 국책과제의 성과가 나와 개방형 산업구조가 갖춰진다고 해도 남는 문제가 있다.


다양한 소비자의 니즈(Needs)에 따라 다양한 건축물에 적합한 솔루션을 제공하려면 융합형 인재가 필요하다. 그런데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현재 우리나라에 BEMS 전문가는 거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BEMS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발과 생산, 건축물의 에너지를 다룬다는 특성이 있다. 결국 에너지, ICT, 건축, 설비, 기기 등을 잘 알아야해 거의 5개 국어에 능통한 사람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한국BEMS협회가 올해 2월 발간한 ‘EMS산업인력 활용 및 교육수요 실태조사 보고서’에서도 이같은 점이 지적됐다.


기업 100곳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현재 교과과정이 부족하다는 인식은 51%, 대학에서 관련 교육과정이 추가돼야 한다는 응답까지 포함하면 68%에 달했다.


이에 따라 국가직무능력표준(NCS) 필요성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BEMS 핵심 5가지 분야에서 인력이 개별적으로 양성되고 있는 만큼 융합인재에 대한 체계적인 국가교육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BEMS업계와 학계에 종사하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개별 과목을 하나의 교육집단에 가르침으로써 폭넓은 지식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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