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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강기호 한국설비기술협회 고문(한국설비연구 대표)

“건축물 지진안전 위해 ‘기계설비기본법’ 제정 시급”


■ 기계설비분야 내진 필요성은
최근 가까운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도 지진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5월5일 구례 북북서쪽 13km 지점에서 리히터규모 3.0의 지진이 발생했고 올해 한반도에서 발생한 71번째 지진으로 기록됐다. 기상청 통계에 따르면 1978년 지진 관측이래 연평균 발생횟수는 47.6회였는데 지난해에는 5배가 넘는 254회가 발생했고 올해는 이미 평균 발생 횟수를 넘기고 있는 상황이다.

지진의 규모도 증가하고 있다. 1978년 이래 규모 4.9~5.8까지의 지진이 13건 있었는데 그중에 2016년에만 3건이 발생했다.

최근 5년간 급증하고 있는 지진발생과 지난해 발생한 경주부근의 강도 높은 지진, 그리고 이후 계속된 여진을 보면 이제는 더 이상 우리나라가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수년 동안 끊임없이 계속된 건축물과 관련된 안전사고를 지켜보면서 이제는 더 이상 건축물의 안전을 방관할 수 없으므로 건축물 내진설계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돼야 할 시점이다.

비구조 부재는 크게 건축적, 기계적, 전기적 요소의 3가지로 분류된다. 비구조 부재는 건물의 구조체와 분리돼 있거나 유연한 성질을 갖고 있어서 구조물의 수평방향 전단저항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는 부재와 시설물을 말한다.

실제로 지진에 의해 발생하는 인명피해 중에서 상당히 많은 부분은 비구조 요소의 파괴가 직접적으로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건물내부 또는 외부의 기계적, 전기적 설비의 파괴는 화재 등 2차 재해를 발생시켜 건물에 직접적인 피해를 줌은 물론 피해의 복구에 필요한 상수도, 전기 등을 적시에 공급하지 못해 피해를 확대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기계설비는 지진이 발생했을 때 이동되거나 넘어지면 안 되기 때문에 이를 잡아주는 구조가 필요하다. 펌프나 냉동기 같은 설비시스템은 평상시에 운전을 하면 진동방지를 위한 방진설비를 해야 한다. 일반 비구조체는 단순히 단단하게 고정만 하면 지진이 와도 안전하지만 기계설비는 진동이 구조체를 타고 사무실 등으로 전달되므로 업무환경에 방해가 된다.

따라서 운전 시 진동을 감소시키면서 지진 시에는 내진스토퍼 등 다른 비구조 요소와는 다른 적절한 기초설계가 이뤄져야 한다.

배관도 마찬가지다. 열을 수송하기 때문에 열팽창으로 신축현상이 생긴다. 또한 초고층 건물은 바람에 의해 심한 변위차가 생기며 지진에 의해 뒤틀림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건축물과 배관은 별도의 스트레스 해석과 설계가 필요하다. 특히 가스나 냉매, 물 등을 수송하는 배관이 파손되면 지진에 의한 1차 피해보다 더 큰 2차 재해를 초래할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기계설비에는 일반 부착물의 내진보다 고도의 설계와 시공, 그리고 기준이 요구되는 것이다.


■ 문제점은 무엇인가
국토부는 오래 전부터 ‘건축법’과 ‘건축물 구조기준 등에 관한 규칙’에서 건축물의 지진에 대한 구조적인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기준을 법제화하고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유독 기계설비에 대해서는 법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대비가 전혀 없는 상황이다. 2000년 관련규정을 개정했지만 건축설비의 항목별 내진설계 기준이나 지침이 없으며 실질적으로 활용할 설계기준이나 시공지침은 전무한 실정이다.

국민안전처는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치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소방시설의 내진설계 기준’을 건축물의 재해예방과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소방시설의 내진설계 기준으로 법제화하고 있다.

그러나 지진이 발생할 때 나타나는 1차적인 재해는 물론, 냉난방열원, 가스배관, 냉온수배관, 물배관 등 설비시스템의 파손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화재와 수해 등 2차 재해를 예방해야 할 기계설비에는 전혀 대비가 없다. 지진 등 재해발생 시 건축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사각지대로 남아있어 ‘건축설비의 내진설계 기준’ 등 재해방지 대책수립이 시급한 실정이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수많은 지진을 겪어오면서 모든 분야에서, 특히 건축물의 건설분야에서 지진에 견딜 수 있게 기술적으로나 법·제도적으로 충실히 대비하고 있다.

특히 1982년 ‘건축설비 내진설계 시공지침’이 발간된 후 개정작업을 계속하며 널리 사용되고 있다. 내진설계 시공지침이 시행되기 전에는 많은 피해가 발생했지만 시행 후에는 피해율이 확연히 감소해 그 효율성을 인정 받고 있다.

이러한 필요성을 기반으로 국내에서도 기계설비분야의 내진설계에 대한 연구가 진행됐다. 지난 2001년 설비엔지니어링 협의회는 ‘건축설비 내진설계기준 사례조사’ 연구를 통해 해외기준과 사례를 종합해 국내 현실에 맞춰 가이드를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건축분야에서는 기계설비를 건축물의 일반 부착물 정도로 치부해 공식적인 지침으로 활용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인정한 공식 기준이 없어 업계에서는 ‘건축설비 내진설계기준 사례조사’를 설계, 시공 시 자발적으로 참고하고 있다. 최근 건설되고 있는 초고층·준초고층 건물들은 ‘건축설비 내진설계기준 사례조사’나 외국의 기준을 참고해 설계하고 있으나 지어진 지 오래된 건물이나 소규모 건물들은 기계설비 내진성능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한 상황이다.

■ 개선방향을 제시한다면

기계설비업계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해서 사용하고 있는 매뉴얼 이상으로 정부의 공인된 기준제시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건축물의 안전에 관한 제도 상의 문제점은 ‘건축법’, ‘소방법’ 등 각 법규가 상호보완적이기보다는 각 법규의 소관 부처별로 배타적으로 분산돼 있어 국민안전을 보장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기계설비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져야할 중요한 전문분야 임에도 불구하고 ‘기계설비 기본법’이 없으며 건축법 상 ‘건축설비기준 등에 관한 규칙’이 있지만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보장할 만한 내용의 조항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건축물의 설비적인 안전을 위한 선행과제는 ‘기계설비의 안전’에 관한 내용이 전혀 담겨 있지 않는 현행 법체계를 개선해서 ‘기계설비 기본법’을 제정하고 기계설비의 안전관리시스템을 바로세우는 것이다.

건축물의 설계는 건축사가 건축설계에 관한 사항을 총괄하고 건축구조, 기계설비, 전기설비, 정보통신설비, 조경, 부대토목 등 각 분야의 관계전문기술자들이 협력해서 완성한다. 건축물의 안전을 위해 지진을 포함한 어떠한 재해요인으로부터도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각 분야의 기술개발과 기준이 제정돼야만 한다.

현재 계획 중에 있는 기계설비 내진설계 기준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우리나라 기계설비의 내진설계와 안전을 위한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