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에너지기술기업 SLB이 독일 열관리·열교환기 전문기업 켈비온(Kelvion)을 총 41억달러 규모로 인수한다. 이로써 AI 데이터센터(AI DC)시장에서 모듈러 인프라와 전력솔루션을 확대해 온 SLB가 핵심 냉각기술까지 직접 확보하면서 전력·기계·냉각·디지털·커미셔닝을 아우르는 통합 인프라사업자로 전환한다.
SLB는 8월31일 아폴로(Apollo)가 운용하는 펀드와 트리톤(Triton)이 자문하는 펀드로부터 켈비온 지분 100%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거래조건은 현금 34억달러와 켈비온이 보유한 부채 약 7억달러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총 거래가치는 약 41억달러다. 규제당국 승인 등을 거쳐 2027년 상반기 거래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켈비온의 2026년 예상 매출은 23억~24억달러, 조정 EBITDA는 3억5,000만~4억달러다. 이중데이터센터부문 매출은 12억~13억달러로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전망이다. 데이터센터는 이미 켈비온의 최대 사업이자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으로 올라섰다. 거래가치는 시너지 반영 전 켈비온의 2026년 예상 EBITDA대비 약 11배, 예상 시너지를 반영하면 약 8.5배 수준이다.
SLB는 인수 완료 후 3년 이내에 비용효율화와 추가 매출을 통해 연간 1억2,000만달러의 EBITDA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거래 완료 후 첫 12개월부터 주당순이익과 주당 잉여현금흐름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으로 예상했다.
개빈 레닉(Gavin Rennick) SLB 신에너지 및 산업사업부 사장은 “데이터센터는 점점 더 정교해지고 에너지 집약적으로 돼가고 있으며 고객들은 시설 전반에 걸쳐 핵심시스템이 어떻게 함께 작동하는지 최적화하고 새로운 용량을 더 빠르게 가동하는 데 도움이 되는 파트너를 점점 더 찾고 있다”라며 “열관리는 이러한 난제의 핵심이며 이번 인수를 통해 우리는 보다 통합된 냉각 솔루션을 제공하고 혁신을 가속화하며 열 효율성을 최적화하고 모듈식 인프라 제공에 열관리를 보다 직접적으로 통합함으로써 이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열교환·방열·액체냉각까지 갖춘 ‘켈비온’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켈비온은 판형열교환기, 증발기, 방열·열회수설비, 엔진·발전기 냉각설비, 변압기 냉각시스템, 코일, 히트펌프, 산업용 냉동설비 등 광범위한 열관리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 데이터센터분야에서는 공랭식 V형 쿨러를 비롯해 아디아바틱·하이브리드 드라이쿨러, 판형열교환기, 액-액 냉각시스템, 중앙집중형 냉각수분배장치(CCDU) 등을 공급한다.
켈비온은 최근 200MW 이상 규모의 미국 AI 데이터센터 1단계 프로젝트에서 4,000만달러 이상 규모의 냉각설비 공급계약을 확보했다. 공급범위에는 현장조립형 GigaBay 공랭식 쿨러와 CCDU 스키드 6대가 포함됐다. CCDU 중 5대는 각각 9MW 이상, 나머지 1대는 4MW 이상의 냉각용량을 갖는다. 액체냉각루프와 외기 방열설비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공급하는 사업모델이다.
또한 미국 뉴저지의 350MW급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에는 150대 이상의 MegaBay 공랭식 쿨러를 공급하는 380MW 규모의 냉각설비 계약을 수주했다. 이같은 대형 프로젝트 수행능력은 SLB가 켈비온을 단순 열교환기 제조사가 아닌 AI DC 열관리 플랫폼으로 평가한 배경으로 풀이된다.
켈비온의 MegaBay는 모듈당 1.5~4MW, GigaBay는 모듈당 4~8MW의 냉각용량을 제공한다. 프리쿨링 활용률을 높여 데이터센터의 PUE와 WUE를 개선하는 한편 대규모 AI 인프라에 필요한 확장성과 단기간 공급능력을 확보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SLB, 3년만 DC사업 2GW 공급체계 구축
SLB는 2023년 데이터센터 솔루션사업을 시작한 이후 모듈러 제조, 오프사이트 제작, 엔지니어링, 디지털설계와 현장 통합능력을 빠르게 확대해 왔다. 2024년부터 2026년까지 관련 매출의 연평균성장률은 9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며 2026년 말까지 누적 데이터센터 인프라 공급용량은 2GW를 초과할 전망이다.
현재 SLB의 공급범위는 전력·네트워크·냉각설비를 포함한 서버홀 인프라(SHI), 냉동기와 공기·액체냉각장비를 수용하는 모듈러 중앙유틸리티빌딩(CUB), 중·저압 배전설비를 내장한 전기설비 모듈(eRoom), 현장 설치와 커미셔닝까지 포함한다. MEP 통합작업을 현장에서 공장으로 이전해 현장인력을 줄이고 프로젝트 구축기간을 기존 방식보다 최대 40% 단축하는 모델이다.
SLB는 켈비온 인수로 데이터센터 공급용량 1GW당 확보할 수 있는 매출기회가 기존보다 2배 이상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켈비온의 열교환·냉각기술을 SLB의 CUB와 서버홀 모듈에 사전 통합함으로써 설계부터 제작, 운송, 설치, 시운전까지 단일 공급체계로 연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SLB와 켈비온의 데이터센터사업을 합산하면 2026년 프로포마 기준 매출은 20억달러 이상, 조정 EBITDA는 약 3억달러가 될 전망이다. SLB는 이를 2028년 매출 45억~50억달러, 조정 EBITDA 7억~8억달러 규모로 확대한다는 목표다.
아폴로가 켈비온의 과반 지분 인수를 완료한 시점은 2026년 1월이다. 당시 기존 최대주주였던 트리톤은 소수 지분을 유지했지만 약 8개월 만에 SLB로의 전략적 매각이 발표됐다. AI 데이터센터 냉각기업의 가치가 단기간에 산업 인프라기업의 핵심 전략자산으로 재평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냉각, 보조설비 아닌 AI DC 성장축 부상
이번 거래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켈비온의 최대 매출처가 전통적인 산업·에너지시장이 아니라 데이터센터라는 점이다. 2026년 예상 매출 23억~24억달러 중 12억~13억달러가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한다. 냉각과 열교환이 전체 데이터센터 투자비 중 일부를 차지하는 보조설비가 아니라 기업 인수가치를 결정하는 핵심 사업으로 올라선 것이다.
SLB가 적용한 EBITDA 11배의 거래배수 역시 대규모 AI 인프라 증설과 고밀도 랙 확산에 따라 냉각자산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졌음을 보여준다. 특히 SLB가 켈비온 인수를 통해 1GW당 매출기회를 2배 이상 확대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은 데이터센터사업의 수익 중심이 단순 구조물 제작에서 고부가가치 전력·냉각·제어통합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액체냉각 확산, 설비측 열교환·방열시장 확대
D2C(Direct-to-Chip)와 액침냉각은 서버에서 발생하는 열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열을 공기 대신 액체로 외부 냉각계통에 전달하는 기술이다. 랙당 발열밀도가 높아질수록 IT루프와 설비수루프를 분리하는 판형열교환기, CDU·CCDU, 펌프, 배관, 드라이쿨러와 열회수설비의 용량과 신뢰성이 더욱 중요해진다.
켈비온이 확보한 액-액 냉각, 판형열교환기, 중앙집중형 냉각수분배장치, 대용량 공랭식 열방출설비는 바로 이 열전달 경로를 구성하는 장비다. SLB의 인수는 액체냉각 확산이 기존 HVAC시장을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냉각수계통과 외기 방열, 열회수시장을 대형화·고도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력–모듈러 MEP–냉각’ 통합사업자 등장
이번 인수는 단순한 열교환기기업 M&A로 보기 어렵다. SLB는 엔비디아와 협력해 NVIDIA DSX AI 팩토리의 모듈러설계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으며 리버티에너지(Liberty Energy)와는 데이터센터용 모듈러 자가발전 및 비하인드더미터 전력솔루션을 공동 공급하는 전략적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여기에 켈비온의 냉각기술이 결합되면 SLB는 발전설비와 전력제어, eRoom, 서버홀 인프라, CUB, 액체냉각, 외기 방열, 열회수, 디지털관리와 커미셔닝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제안할 수 있다. 서버나 GPU를 제외한 데이터센터 물리 인프라의 상당 부분을 단일 사업자가 설계·제작·통합하는 모델이다.
AI 데이터센터 발주방식도 전력설비, 기계설비와 냉각설비를 개별 구매한 뒤 현장에서 연결하는 방식에서 성능과 공기를 함께 보증하는 통합패키지 방식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커졌다. 전력과 냉각을 별도로 최적화하는 설계보다 IT부하, 발전방식, 수배전, 냉각수온도, 외기조건과 열회수처를 동시에 검토하는 시스템 엔지니어링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공기단축이 냉각장비 경쟁력으로
SLB가 강조하는 데이터센터 사업지표는 ‘타임 투 토큰(Time to Token)’이다. 데이터센터를 얼마나 빨리 완공해 실제 AI연산과 수익창출을 시작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SLB는 오프사이트 제작과 병행시공을 통해 구축기간을 최대 40% 단축할 수 있다.
켈비온 역시 200MW 이상 AI DC 냉각 프로젝트에서 6개월이라는 납기조건에 맞춰 대형 공랭식 쿨러와 CCDU를 모듈화해 공급했다. 앞으로 냉각장비의 경쟁력은 단품의 열교환효율뿐만 아니라 표준화 설계, 공장 사전조립, FAT(공장인수시험), 물류, 배관·제어 인터페이스, 현장 설치와 커미셔닝까지 포함해 평가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업계, 장비효율 넘어 ‘통합수행능력’ 확보 시급
이번 거래는 국내 데이터센터 냉각기업과 기계설비업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글로벌 사업자가 전력·모듈러·냉각을 결합한 패키지로 시장에 진입하면 열교환기, 드라이쿨러, CDU, 펌프와 밸브를 각각 공급하는 방식만으로는 대형 AIDC 수주경쟁에 대응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국내기업은 장비효율과 가격경쟁력에 더해 랙부하 변화에 따른 냉각수온도 제어, 수질·부식·입자관리, 누수감지, 이중화, 부분부하 운전, 열회수, 통합제어와 커미셔닝까지 시스템 단위로 검증해야 한다. 설계사·건설사·장비제조사 간 프리패브·모듈러 협업체계를 구축하고 대규모 프로젝트의 반복생산과 납기를 보증하는 제조능력도 중요한 평가항목이 될 전망이다.
SLB의 켈비온 인수는 AI DC 냉각시장의 경쟁축이 ‘어떤 장비가 더 효율적인가’에서 ‘누가 전력과 냉각을 통합해 더 빠르고 안정적으로 가동시킬 수 있는가’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AI 데이터센터시장에서 냉각은 더 이상 건물 완공 후 설치하는 부대설비가 아니라 사업기간과 연산용량, 운영비와 수익개시 시점을 결정하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