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11월1일부터 시스템에어컨으로 불리는 멀티EHP의 에너지소비효율 관리체계가 전면 개편된다.
현재 별도 효율관리기자재 품목으로 관리되는 ‘멀티전기히트펌프시스템’이 삭제되고 냉방전용 제품은 ‘전기냉방기 멀티형’, 냉난방겸용 제품은 ‘전기냉난방기 멀티형’으로 각각 편입된다.
품목명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냉난방겸용 멀티EHP의 등급부여지표가 통합냉방효율과 난방효율을 평균한 냉난방효율(EERa)에서 냉방기간 에너지소비효율(CSPF)과 난방기간 에너지소비효율(HSPF)로 바뀐다.
정격냉방능력 20kW 이상 70kW 미만을 하나의 구간으로 관리하던 방식도 △20kW 이상 38kW 미만 △38kW 이상 50kW 미만 △50kW 이상 70kW 미만 등 3개 구간으로 세분된다.
한국에너지공단의 관계자는 “개편된 기준은 11월1일 이후 제조되는 제품부터 적용되며 수입제품도 국내 통관일이나 수입신고일이 아닌 해외 제조일을 기준으로 적용된다”며 신규 기준에 맞춘 전기냉방기·전기냉난방기 등급라벨 시안도 공개했다.
멀티EHP, 독립 품목서 냉난방기 하위유형 전환
현행 효율관리제도에서는 전기냉방기, 전기냉난방기, 멀티전기히트펌프시스템이 서로 다른 품목으로 관리된다. 가정용·소형 상업용 에어컨은 전기냉방기 또는 전기냉난방기로 분류되지만 하나의 실외기에 여러 대의 실내기를 연결하는 시스템에어컨은 멀티전기히트펌프시스템이라는 별도 품목으로 신고하고 시험·등급을 부여받는다.
기존 멀티전기히트펌프시스템 적용범위에는 단일 실외유닛 기준 정격냉방능력 20kW 미만의 냉방전용기기와 20kW 이상 70kW 미만의 냉난방겸용기기가 포함됐다. 실외기 한 대에 복수의 실내기를 냉매배관으로 연결하는 가변냉매유량 방식의 제품이 주요 대상이다.
11월부터는 멀티전기히트펌프시스템이라는 독립된 품목이 삭제된다. 제품의 기능에 따라 냉방전용은 전기냉방기, 냉난방겸용은 전기냉난방기로 편입하고 제품구조를 ‘멀티형’으로 구분한다. 이에 따라 효율관리제도상 전기냉방기와 전기냉난방기는 싱글형·홈멀티형·멀티형을 하나의 품목체계 안에서 관리하게 된다.
신규 등급라벨에도 싱글형, 멀티형, 홈멀티형 1대2 조합, 홈멀티형 1대3 조합 등 제품구조가 표시된다. 소비자가 같은 ‘에어컨’ 또는 ‘냉난방기’ 품목 안에서도 실내외기 조합방식을 구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EERa 대신 CSPF·HSPF로
가장 큰 변화는 효율을 평가하는 지표다. 현행 멀티EHP 중 정격냉방능력 20kW 이상 70kW 미만 냉난방겸용 제품은 통합냉방효율(IEER)과 난방효율(COP)을 산술평균한 냉난방효율(EERa)을 소비효율등급 부여지표로 사용한다.
IEER는 정격능력의 100%, 75%, 50%, 25% 등 4개 냉방 부하조건에서 측정한 효율을 정해진 비율로 가중평균한 값이다. 난방효율은 표준난방조건과 한냉지난방조건에서 측정한 COP를 평균해 산출한다.
현행 최저소비효율기준은 냉난방효율 EERa 3.61 이상, 통합냉방효율 IEER 4.60 이상, 난방효율 COP 2.30 이상, 한냉지난방효율 COP2 1.54 이상이다. 네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시장에 공급할 수 있다. 소비효율등급은 EERa를 기준으로 부여하며 1등급은 EERa 6.35 이상과 스마트기능을 함께 요구한다.
11월부터는 이러한 EERa 중심 등급체계가 사라지고 CSPF와 HSPF가 등급부여지표가 된다. CSPF는 냉방기간에 공급한 총 냉방량을 같은 기간 소비한 총 전력량으로 나눈 값이다. HSPF는 난방기간 총 난방량과 총 소비전력량의 비율이다.
특정 부하와 외기조건에서 측정한 몇 개의 효율값을 평균하는 방식에서 외기온도와 건물부하가 변하는 냉방·난방기간 전체의 운전성능을 평가하는 구조로 이동하는 것이다.
측정방법도 멀티EHP 독립규격에서 적용하던 KS B ISO 15042와 AHRI 1230 등의 시험체계에서 전기냉방기·전기냉난방기에 적용하는 KS C 9306 기반 CSPF·HSPF 체계로 통합된다.
기존 EERa와 신규 CSPF·HSPF는 산출방법과 시험조건이 서로 달라 숫자를 직접 비교해 몇 % 강화됐다고 계산할 수 없다. 제도적 의미는 냉방과 난방을 하나의 평균값으로 표현하던 방식에서 두 계절의 성능을 각각 관리하는 방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냉방효율이 높고 난방효율이 낮거나 그 반대인 제품은 한쪽의 높은 효율로 다른 쪽의 부족한 효율을 상쇄하기 어려워진다.
20~70kW 3개 용량구간으로 세분
냉난방겸용 멀티형 전기냉난방기의 최저소비효율기준은 정격냉방능력에 따라 차등 적용된다. 20kW 이상 38kW 미만 제품은 CSPF 4.62와 HSPF 2.49 이상을 충족해야 최저소비효율기준을 만족한다. 38kW 이상 50kW 미만은 CSPF 4.45·HSPF 2.36, 50kW 이상 70kW 미만은 CSPF 4.29·HSPF 2.28이 각각 최저기준이다.
1등급을 받으려면 20kW 이상 38kW 미만은 CSPF 5.60·HSPF 3.05, 38kW 이상 50kW 미만은 CSPF 5.40·HSPF 2.87, 50kW 이상 70kW 미만은 CSPF 5.20·HSPF 2.80 이상이어야 한다.
효율값과 함께 스마트기능도 구현해야 1등급을 받을 수 있다. 스마트기능은 실외기의 소비전력 또는 소비전력량을 애플리케이션과 제어장치를 통해 확인하고 원격으로 대기모드 전환과 온도·풍량 등 운전기능을 제어할 수 있는 기능이다. 2~5등급에는 스마트기능 구현 여부가 등급조건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기존에는 20~70kW 냉난방겸용 멀티EHP를 하나의 효율기준으로 평가했지만 앞으로는 제품용량이 커질수록 별도의 기준을 적용한다.
대형 실외기는 연결되는 실내기 대수와 냉매배관, 압축기 구성, 운전부하 특성이 소형 제품과 다르다. 용량대별 기준 세분화는 이러한 제품특성을 반영하는 동시에 동일 용량군 안에서 제품간 효율비교를 강화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격성능보다 부분부하·계절운전 중요
멀티EHP는 대부분의 운전시간을 정격 100%가 아닌 부분부하 상태에서 가동한다. 사무실이나 학교, 상업시설은 시간대와 공간별로 냉난방부하가 달라 여러 실내기가 동시에 최대출력으로 운전하는 시간이 제한적이다. 실제 에너지사용량은 압축기의 저부하 운전효율, 실내기 조합제어, 전자팽창밸브 제어, 팬 소비전력, 냉매유량 분배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CSPF·HSPF 체계에서는 정격조건에서 높은 효율을 내는 것만으로 높은 등급을 확보하기 어렵다. 계절별 외기조건과 부하변화에 대응해 압축기와 팬, 냉매회로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제어하는지가 중요해진다.
난방에서는 외기온도가 낮아질수록 증발온도가 내려가고 실외열교환기에 착상이 발생한다. 제상운전이 잦아지면 난방공급이 중단되고 전력소비가 늘어날 수 있다.
신규 HSPF 기준은 한 개 또는 두 개의 난방 시험점보다 난방기간 전체의 성능을 평가하기 때문에 저외기 운전과 제상제어, 부분부하 효율을 포함한 시스템 최적화의 중요성이 커질 전망이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압축기 정격효율뿐만 아니라 열교환기 면적, 냉매유로, 인버터 운전범위, 팬제어, 제상알고리즘, 복수 실내기 제어 등 제품 전체의 계절성능을 개선해야 한다.

기존 1등급, 신규 기준서 자동 승계 안돼
효율지표와 시험방법이 바뀌는 만큼 현행 멀티EHP 1등급 제품이 신규 기준에서도 자동으로 1등급을 유지한다고 볼 수 없다.
현재 1등급은 EERa를 기준으로 판정하지만 11월 이후에는 CSPF와 HSPF가 각각 해당 등급구간을 충족해야 한다. 제품에 따라 냉방 계절효율은 1등급 기준을 만족하지만 난방 계절효율은 2등급에 머무르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기존 시험성적서에 포함된 IEER·COP 데이터만으로 신규 CSPF·HSPF를 단순 환산하는 것도 어렵다. 11월 이후 계속 제조·수입할 모델은 새로운 적용범위와 시험방법, 제품신고, 등급표시 절차를 확인해야 한다.
제조사와 수입사는 △적용품목 재분류 △신규 시험성적서 확보 △효율등급 신고 △제품 데이터베이스 등록 △카탈로그·제안서 수정 △라벨 교체 등을 시행 전에 마쳐야 한다.
시험대상 모델이 한꺼번에 몰릴 경우 시험기관의 일정과 시험설비 확보도 변수가 될 수 있다. 멀티EHP는 실외기 한 대와 여러 실내기의 조합, 냉매배관, 제어프로그램을 구성해 시험해야 해 일반적인 단일형 냉난방기보다 시험준비가 복잡하다.
수입품도 ‘국내 반입일’ 아닌 '제조일' 기준
신규 기준은 11월1일 판매분이나 설치분이 아니라 제조분부터 적용된다. 국내 생산제품은 제조일이 11월1일 이후이면 신규 기준과 라벨을 적용해야 한다. 수입제품 역시 국내에 들어온 날짜나 수입신고·통관일이 아니라 해외 공장에서 생산된 제조일을 기준으로 적용한다.
이에 따라 유통시장에는 10월31일 이전 제조된 기존 멀티전기히트펌프시스템 라벨 제품과 11월1일 이후 제조된 전기냉방기·전기냉난방기 멀티형 라벨 제품이 한동안 함께 존재할 수 있다.
같은 제조사의 유사한 모델명을 사용하더라도 제조시기에 따라 적용기준과 효율등급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한국에너지공단도 측정방법 변경과 기준 강화에 따라 제조일별로 소비효율과 효율등급이 달라질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수입사는 해외 제조공장의 생산일자와 국내 신고자료를 일치시킬 수 있는 증빙체계를 갖춰야 한다. 제조일 확인이 불명확하면 통관과 시장 사후관리 과정에서 적용기준을 둘러싼 혼선이 발생할 수 있다.

발주서의 ‘멀티EHP 1등급’ 문구도 바꿔야
설계·조달시장도 제도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현재 공공건축물과 학교, 업무시설 등의 기계설비 시방서에는 ‘멀티전기히트펌프시스템’ 또는 ‘EHP 에너지소비효율 1등급’이라는 문구가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11월 이후 제조제품을 발주하면서 삭제된 품목명과 기존 EERa 기준을 그대로 요구하면 제품신고정보·등급라벨과 설계도서 사이에 불일치가 발생할 수 있다.
발주기관과 설계사는 제품을 전기냉방기 멀티형 또는 전기냉난방기 멀티형으로 구분하고 정격냉방능력별 CSPF·HSPF와 등급을 확인해야 한다. 장기간 진행되는 건설사업에서는 계약·설계 당시에는 기존 멀티EHP 기준을 적용했지만 실제 제품 생산·납품은 11월 이후 이뤄질 수 있다. 이 경우 기존 설계제품의 신규 시험·신고 여부와 효율등급 변화를 확인하고 동등이상 제품 판정기준을 정리해야 한다.
단순히 ‘1등급 제품’이라고 표기하기보다 적용 고시와 제품 제조일, 제품유형, 정격냉방능력, CSPF·HSPF 최소값을 함께 제시하는 방식이 혼선을 줄일 수 있다.
에너지절감량 산정에서도 기존 EERa와 신규 계절효율을 동일한 값처럼 비교해서는 안 된다. 리트로핏사업이나 ESCO사업에서 기존 제품과 신규 제품의 절감효과를 비교할 경우 실제 운전시간과 부분부하율, 외기온도, 실내기 가동률을 반영해야 한다.
2029·2032년 추가 강화 예고
11월 개편은 최종단계가 아니다. 효율관리기자재 운용규정에는 2029년 11월1일과 2032년 11월1일부터 적용할 중장기 목표소비효율기준도 제시돼 있다.
20kW 이상 38kW 미만 멀티형 전기냉난방기의 최저기준은 2026년 CSPF 4.62·HSPF 2.49에서 2029년 CSPF 4.76·HSPF 2.54, 2032년 CSPF 4.90·HSPF 2.61로 높아진다.
38kW 이상 50kW 미만 제품은 같은 기간 CSPF 4.45·HSPF 2.36에서 CSPF 4.72·HSPF 2.48로, 50kW 이상 70kW 미만 제품은 CSPF 4.29·HSPF 2.28에서 CSPF 4.55·HSPF 2.39로 단계적으로 강화된다.
제품개발주기가 수년에 이르는 점을 고려하면 제조사는 11월 기준 충족에만 맞출 것이 아니라 2029년과 2032년 기준을 반영한 압축기·열교환기·제어기술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히트펌프 보급확대, ‘실제 계절성능’이 경쟁력
멀티EHP 효율관리 개편의 본질은 시스템에어컨의 명칭을 바꾸는 데 있지 않다. 냉방과 난방을 하나의 평균값으로 평가하던 구조에서 계절별 총 공급열량과 총 소비전력을 기준으로 실제 운전성능에 가까운 효율을 평가하는 체계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는 건물의 냉난방 전기화와 히트펌프 보급확대 과정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히트펌프가 화석연료 보일러를 대체하려면 정격조건에서의 높은 COP뿐만 아니라 겨울철 외기온도 변화와 부분부하, 제상운전이 반영된 연간성능을 확보해야 한다. 냉방기기로 판매됐던 시스템에어컨도 앞으로는 냉방과 난방을 모두 담당하는 건물 열원으로서 평가받게 된다.
11월 이후 멀티EHP시장의 경쟁기준은 기존 효율등급 숫자에서 CSPF·HSPF, 부분부하 제어, 저외기 난방, 스마트 운전관리로 확대될 전망이다. 제조사와 시험기관뿐만 아니라 설계사·발주기관·조달기업도 기존 품목명과 EERa 기준을 신규 멀티형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멀티전기히트펌프시스템이라는 품목은 사라지지만 시스템에어컨의 중요성은 오히려 커진다. 이번 개편이 제품효율 표시변경에 머물지 않고 국내 건물 냉난방의 실제 계절성능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