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주 명지대학교 건축대학 교수는 최근 발표한 ‘유럽 ZEB 활성화를 위한 정책동향과 국내 시사점’ 현안분석 보고서를 통해 건물부문 탄소중립의 성패는 민간건축물의 자발적 참여에 달려 있으며 이를 위해 기존 ‘제로에너지건축물(ZEB: Zero Energy Building)’에서 ‘제로배출건축물(ZEB: Zero-Emission Building)’로 전면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민간참여를 가로막는 근본적인 장벽이 단순히 설비설치의 문제가 아닌 초기 투자비 부담과 실제 절감성과에 대한 불확실성, 그리고 임대인과 임차인 간 이해관계 충돌(Split Incentives)에 의해 발생한다. 이에 따라 정책의 초점 또한 단순한 설치 보조금 지급에서 벗어나 실제 절감성과에 따라 금융조건이 결정되는 ‘성과기반 인센티브(Pay for Performance)’로 전환돼야 한다.
유럽연합(EU)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 건물에너지성능지침(EPBD)을 개정하고 건물의 목표를 현장 화석연료 배출이 없는 ‘제로배출건축물’로 재정의했다. 이는 고밀도 도심지에서 옥상 면적 부족 등으로 인해 대지 내(On-site) 신재생에너지 생산만으로는 에너지자립률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 조치로 판단된다.
개정된 지침은 부지 내 생산에만 집착하지 않고 외부의 청정 집단에너지 열그리드 연계 등을 감축성과로 폭넓게 인정함으로써 도심 건물이 유연하게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는 경로를 열어줬다. 특히 2050년까지 모든 기축 건물을 제로배출 수준으로 전환한다는 명확한 타임라인을 법제화해 시장에 강력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현안보고서에 따르면 유럽 주요국들이 규제와 금융, 성과검증을 ‘톱니바퀴’처럼 결합해 운영하고 있다. 독일은 개보수 후 달성된 에너지효율등급에 따라 갚아야 할 대출 원금을 차등적으로 감면해주는 파격적인 방식을 도입했으며 프랑스는 ‘디지털건물 로그북’을 의무화해 시공이력과 성과를 투명하게 관리하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의 기반에는 에너지성능인증서(EPC)라는 표준화된 척도가 자리 잡고 있어 금융기관이 건물의 성능을 담보가치나 금리 우대 심사에 직접 활용할 수 있는 ‘녹색 금융 인센티브’의 토대가 되고 있다. 또한 초기 목돈 부담을 없애기 위해 매달 절약되는 에너지비용으로 대출을 상환하는 ‘절감액 상환(Pay as you save)’ 구조를 도입해 현금흐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30년 이상된 노후건축물 비율이 44.4%에 달할 정도로 급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대규모 리노베이션으로 유도할 투자구조가 부재한 상황이다. 기존 이자 지원사업은 정책의 연속성이 부족하고 실제 절감성과와 금융혜택이 연동되지 않아 민간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다.
특히 도심 노후아파트는 전면적인 전기화(히트펌프 전환)를 위한 설비공간이나 전력용량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단순 기술보급보다는 지역난방 연계 등 건축물 맞춤형 탈탄소 경로를 제도적으로 편입시키는 노력이 시급한 상황이다. 건물 현장의 화석연료 직접배출(Scope 1)을 퇴출하고 외부 청정열원을 통한 간접관리(Scope 2)체계로 전환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명주 교수는 “한국형 민간건축물 녹색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한 4대 핵심과제로 실제 에너지 감축량을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자산화할 수 있는 ‘국가차원의 MRV(측정·보고·검증)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라며 “이에 더해 개별 건축주가 상담부터 공사, 대출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통합지원센터(원스톱 숍)’를 도심 곳곳에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수십년에 걸친 장기상환이 가능하고 성과에 따라 원금을 경감해주는 혁신적인 금융상품의 설계도 시급하다”라며 “마지막으로 성능이 최악인 노후건물은 의무적으로 개선하도록 하는 ‘최소에너지성능기준(MEPS)’을 단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명주 교수는 “4대 핵심과제를 축으로 민간시장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확실한 계기를 마련해야 실질적인 탄소중립시대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