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50 탄소중립 선언과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한 건물부문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해지고 있다. 현대인은 하루의 약 80% 이상, 최대 90%를 △주택 △사무실 △대중교통 등 실내공간에서 머물며 생활한다.
이에 따라 실내공기질(IAQ)관리는 국민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핵심이슈로 부상했으며 국내 기업들의 관련 기술은 이제 국내를 넘어 해외시장으로 활발히 수출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반면 거실이나 사무실 등 가시적인 공간의 IAQ 관리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사이 실내 오염원 방출이 가장 빈번하고 복합적인 ‘욕실’은 여전히 관리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거세다. 이에 따라 욕실공기질관리 현황과 개선방향, 기술동향 등에 대해 알아봤다.
욕실공기질, 관리 사각지대 해소 ‘시급’
욕실은 재실자의 활동에 따라 온도와 습도가 급격히 변하며 다양한 가스상 오염물질과 미생물이 공존하는 ‘복합오염의 화약고’와 같다. 특히 변기 물을 내릴 때 발생하는 ‘에어로졸 플룸(Aerosol Plume)’ 현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세균과 비말을 상부로 비산시켜 공기 중에 장시간 부유하게 만든다.
입자크기에 따른 물리적 특성을 분석하면 직경 10㎛의 비교적 큰 입자조차 실내에서 1.8m를 낙하하는 데 약 10분의 시간이 소요되며 PM2.5 이하 미세입자는 사실상 침강하지 않고 기류를 따라 실내 곳곳을 부유한다.
이러한 오염입자들은 욕실의 높은 습도와 만나 △수건 △칫솔 등 위생용품에 흡착되거나 문을 여닫는 찰나의 공기흐름을 타고 거실과 침실로 전이돼 집안 전체의 부유미생물 농도를 높이는 주범이 되고 있다.
기존 결로와 곰팡이 문제는 과거 겨울철 발코니에 국한된 이슈였으나 최근 기온상승과 고습환경이 고착화되며 이제는 계절과 상관없이 실내 곰팡이 피해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곰팡이 증식은 단순히 벽면 오염이라는 시각적 문제를 넘어 공기 중 포자 확산으로 이어지며 이는 면역력이 약한 재실자에게 치명적인 호흡기질환을 유발하는 요인이 된다.
특히 욕실은 △세정제 △방향제 등에서 발생하는 휘발성유기화합물(VOCs)과 높은 습도가 결합할 때 그 위해성이 더욱 증폭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정밀한 환기설계나 유해물질 관리기준은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다.
욕실 내 수계 관리시스템에서 발생하는 생물학적 위협도 간과할 수 없다. 수계 감염병의 원인균인 레지오넬라는 25~45℃ 구간에서 가장 활발히 증식하는데 국내의 많은 중앙식 아파트나 병원들은 에너지절약 차원에서 배관온도를 40℃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어 레지오넬라 관리에 매우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레지오넬라균은 55℃ 이상에서 급격히 사멸하지만 에너지소비효율만을 강조하는 현행관리 체계에서는 균 증식에 최적화된 온도가 방치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최근 폭염으로 인해 옥상 물탱크 온도가 38℃ 이상으로 급상승하면서 이제는 냉수 계통에서조차 레지오넬라균이 검출되는 등 폭염과 수계 오염이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건강위협이 현실화되고 있다.
배관 내부에 형성되는 바이오필름(생물막)과 물때는 소독제를 사용하더라도 다시 증식하는 끈질긴 생명력을 보이며 이는 결국 공기 중 바이오 에어로졸 농도를 높이는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배관교체나 전문적인 세정과 같은 근본적인 조치가 필요하지만 현장의 비용부담과 인식부족으로 인해 사실상 레지오넬라 관리 무방비 상태에 놓인 시설이 적지 않다.
미국의 경우 냉각탑을 통한 집단 사망사건 이후 모든 냉각탑을 등록하고 데이터베이스화하는 ‘냉각탑 법’을 시행 중인 반면 우리나라는 시설별 관리체계와 법적근거가 여전히 미비한 상태다.
한국은 2005년 세계 최초로 실내공기질법을 제정한 선도국이지만 현재 △폼알데하이드 △VOCs △라돈 등 10여가지 주요 물질에만 관리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한계로 지적된다.
유럽의 경우 실내 오염관리 대상물질을 훨씬 구체적이고 광범위하게 설정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이와 같은 국제적 흐름에 맞춰 관리대상을 대폭 확대하고 현장실태 파악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욕실과 같이 오염부하가 높은 공간에 대해서는 ‘대상 시설 맞춤형 환기기술 등급 분류’를 도입해 특정 분류의 사업장이나 주거시설은 국가가 실시간으로 통제할 수 있는 환기 의무화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높다.
여명석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지난해 학부생들과 함께 욕실공기질 관련 연구를 통해 기존 설계는 주로 수증기 제거와 공간 평균 환기량 확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오염물질의 거동과 인체노출에 대한 통합적 분석이 미비하다는 걸 알게 됐다”라며 “사람의 배설물에서는 다양한 휘발성 성분이 방출되며 기존 천장 배기방식은 인체표면에서 발생하는 부력기류와 상호작용해 변기에서 발생한 오염물질을 사용자의 호흡선 방향으로 수송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연구결과에 따라 단순히 전체 환기량을 늘리는 것을 넘어 오염원이 인체에 도달하기 전 오염원을 직접 포집하는 ‘국소 배기’방식 등 다양한 욕실공기질관리방식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존 IAQ관리체계는 특정 시점에 센서데이터를 확인하고 환풍기를 돌리는 ‘단일항목 중심의 사후대응’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다중 오염물질 △재실자 밀도 △환기조건 △외기환경 등 복합요인이 동시에 작용하는 욕실환경에서는 이러한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이제는 센서데이터 중심의 단편적 모니터링을 넘어 △통합솔루션 △지능형 제어 △현장성능 구현 △위생가전화 등 다양한 전략 도입이 시급하다.
욕실공기질 新 패러다임 ‘AI기반 예측형 대응체계’
최근 실내공기질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욕실 환기제품 역시 단순 환기장치에서 벗어나 성능과 기능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시장이 변화하고 있다. 특히 해외시장에서는 환기성능뿐만 아니라 △저소음 △에너지효율 △디자인 등을 고려한 제품들이 지속 등장하고 있으며 국내시장 역시 이러한 흐름과 함께 점차 고도화되고 있다.
주방에서 욕실까지 ‘전실제어’ 통합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는 하츠는 레인지후드시장에서 축적된 공기흐름설계 노하우를 주거공간 전체로 확장하는 공간 크리에이터전략을 취하고 있다.
욕실 단일 공간이 아닌 주방과 거실 등과 연계된 전실제어 개념을 적용해 집 전체의 공기질 균형을 관리하고 있으며 필터교체와 정기점검을 지원하는 렌탈서비스를 도입해 사용자가 지속적으로 쾌적한 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힘펠은 36년간의 업력을 바탕으로 욕실 환풍기를 단순 설비에서 프리미엄 가전의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특히 360도 전동회전 토출기술을 통해 기류를 욕실 전체에 균일하게 확산시켜 온도편차를 줄이고 습기 제거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 큰 특징이다.
스마트 UX 및 지능형 제어기능도 탑재해 조작 편의성을 높였으며 감성 조명과 사운드기능을 결합해 욕실을 체류형 힐링공간으로 확장하며 새로운 욕실환경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센도리는 이론적 수치가 아닌 실제 설치환경에서 성능이 유지되는 엔지니어링 기반 환기에 집중하며 공공조달시장에서 강력한 신뢰를 구축하고 있다.
정풍량·고정압설계를 통해 덕트길이나 외부 압력변화에 관계없이 일정한 풍량을 유지하는 기술을 적용해 설치환경에 구애받지 않는 성능을 보장한다. 이에 더해 폐열회수 환기기술을 통해 탄소중립 흐름에 부합하는 고효율 시스템을 공급하며 향후 AI기반 스마트빌딩 연동플랫폼으로 확장을 도모하고 있다.
LG전자는 기존 프리미엄 가전(퓨리케어)에서 검증된 위생 및 제어기술을 욕실에 이식해 고객경험의 자동화를 구현했다. 별도 조작 없이도 온·습도를 실시간 감지해 △온풍 △송풍 △환기모드 등을 스스로 전환해 욕실을 최적의 상태로 유지한다.
본체에 듀얼배기를 적용해 환기속도를 높였으며 UV-LED로 팬의 세균을 99.99% 살균하는 프리미엄 위생기술을 적용했다. 특히 ThinQ기반 통합관리시스템이 가능해 △거실(시스템에어컨) △방(전열교환기) △욕실(바스에어시스템) 등을 하나의 앱 플랫폼에서 통합관리하는 주거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거주시간대비 적정 환기성능에 대한 검토가 부족한 욕실환경 개선을 위해 그간 하츠와 힘펠, 센도리 등 중소기업 중심으로 기술 및 제품개발이 진행됐다”라며 “최근 LG전자를 비롯한 대기업까지 본격 욕실공기질 관리시장에 진출한 만큼 기존 시장이 더 확장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대기업의 시장진입은 기술경쟁과 품질기준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시장 참여기업이 다양해질수록 제품성능과 기술개발에 대한 경쟁이 활성화되며 결과적으로 소비자 선택의 폭 확대와 시장 전체의 성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에 더해 대기업의 진출은 미디어와 다양한 광고채널을 통해 실내공기질관리의 중요성을 소비자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알리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욕실공기질관리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도 함께 확산될 것으로 전망이다.
다중 오염원과 재실자 밀도가 동시에 작용하는 욕실환경을 효과적으로 제어하기 위해 △공간 △설비 △사용자 등을 통합하는 ‘디지털트윈 기반 실내공기질 통합관리플랫폼’으로 진화가 필수적이다. 또한 △환기성능 △소음 △에너지효율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기준이 마련돼야 제품 개발방향과 시장발전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IoT TMS를 넘어 AI기반 예측형 대응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오염발생 전 미리 환기강도를 조절하고 배관 내 바이오필름 형성 가능성을 사전 경고하는 능동형 운영이 이뤄져야 한다. 에너지효율과 공기질관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욕실환경의 스마트화는 탄소중립 건축의 완성도를 판가름하는 새로운 기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