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토교통부가 추진해 온 제로에너지건축물(ZEB) 의무화 로드맵에 따라 지난 2024년 민간 공동주택과 일정 규모 이상 민간 건축물로 ZEB등급 수준의 설계 의무화가 본격적으로 확대 적용된 지 어느덧 2년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ZEB정책은 건물부문의 탄소중립을 달성하고 기후위기시대에 국민들에게 보다 쾌적하고 안전한 주거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핵심 드라이브로 안착해 왔다.
민간 ZEB 도입 이후 건축물의 단열성능이 극대화될수록 단열선이 끊기는 접합부로 에너지가 집중 누출되는 ‘열교(Thermal Bridge)’ 현상의 심각성이 꾸준히 지적돼 왔다. 고단열·고기밀 건축물일수록 전체 열손실 중 열교비중이 최대 35%까지 치솟는 만큼 ZEB의 취지를 살리고 건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현장 실무와 제도의 고도화 논의가 시급한 시점이다.
이에 따라 현시점에서 제도와 현장의 가교를 잇고 설계·시공 실무진의 애로사항을 해소하며 열교차단시장이 진정한 활기를 찾기 위해 필요한 과제와 고도화 방향 등에 대해 알아봤다.
‘페이퍼 갭’ 직면 민간 ZEB 현장 체감도 정체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추진으로 설계사무소와 건설사 내에서 열교검토 및 기술협의 요청이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은 분명 고무적인 신호다. 과거 공공건축물 위주로 적용되던 열교차단기술이 이제는 민간 공동주택과 대형 업무시설의 설계검토단계까지 폭넓게 적용되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에 비해 실제 시공현장까지 기술이 무결하게 반영되는 비율은 아직 과도기적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시행사와 시공사 등 건축을 주도하는 비즈니스 주체들이 초기 투자비 상승이라는 현실적인 장벽 앞에서 주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권영철 한라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는 “정책 로드맵상 민간건축물이 ZEB 5등급 수준으로 설계되도록 유도하고 있다”라며 “다만 현장에서는 공사비를 즉시 부담해야 하는 시행·시공사와 분양 후 장기적인 운영에너지비용 절감혜택을 누리는 소유자 사이의 비용책임구조 갭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비즈니스 구조 속에서 설계 실무진은 까다로운 열교차단 상세를 설계하고 현장을 제어하기보다 상대적으로 단가가 낮고 익숙한 일반 단열재의 두께를 규정 이상으로 키우거나 건물 옥상 및 외벽에 태양광패널(PV·BIPV)을 추가해 서류상 ZEB 자립률 등급점수를 보완하는 ‘최소 비용 최적화’ 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건물에너지 평가프로그램(ECO2 등)의 알고리즘 내에서 열교차단에 따른 정량적 에너지절감 효과를 설계자가 직관적으로 체감하고 변별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실무적 한계가 더해져 시장 플레이어들이 자발적으로 열교기술을 채택할 유인이 아직도 부족한 상황이다.
EPI·TDR 기준 맹점 보완 ‘선형열관류율’ 도입 시급
국내 건축기준을 구성하는 ‘건축물의 에너지절약설계기준’의 EPI(에너지성능지표) 배점체계와 공동주택 결로방지 설계기준의 ‘TDR(온도차이비율)’은 그간 국내 건축물의 기본 성능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 하지만 고등급 ZEB가 일상화되는 현시점에서는 이러한 제도가 보다 유기적으로 연계돼야 한다는 학계의 조언이 뒤따르고 있다.
현재 EPI 배점체계에서 열교차단은 선택가점으로 분류돼 있어, 시공이 쉬운 기계·전기설비 항목만으로도 허가점수를 채울 수 있는 구조다. 또한 실무표준인 TDR기준 역시 결로·곰팡이 억제라는 최소한의 ‘위생 방어선’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열교차단업계의 한 관계자는 “TDR기준을 맞추기 위해 외벽 내측 발코니 바닥 끝단까지 온수난방 배관을 무리하게 연장해 실내 표면온도를 강제로 높이는 임시방편식 설계가 현장에서 간혹 쓰이고 있다”라며 “이는 결로는 일시적으로 면할 수 있지만 선형열교로 인한 에너지누출 자체를 근본적으로 차단하지 못하고 오히려 열에너지를 외부로 버리는 역설을 낳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 당국 역시 이러한 현장의 목소리를 인지하고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개선 방향을 장기적으로 검토 중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시장에 과도한 규제적 부담을 지우기보다는 점진적이고 영리한 패러다임 전환을 유도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박덕준 KCL(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ZEB센터장은 제도의 급격한 변화 대신 성능평가 경로의 다층화를 대안으로 제시하며 “독일 사례처럼 기본 일괄 가산치를 부여하는 단계에서 시작해 검증된 표준상세를 준수하면 혜택을 주는 동등성 입증단계를 거쳐 프로젝트별로 선형열관류율을 상세 계산하는 3단계 경로를 구축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며 “국내의 관련 기준들이 일관성 있는 열교부위 정의와 산정체계를 공유해 연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BIM·디지털트윈 통합 3차원 열교핫스팟 시각화
현장의 페이퍼 갭과 실무 부담을 덜어줄 구원투수로 주목받는 것이 바로 디지털건축기술이다. 과거 평면도면(2D) 상에서 취약부위를 임의 검토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최근 구조·에너지·디지털기술이 융합된 BIM(건물정보모델링) 및 디지털트윈(Digital Twin) 환경으로 고도화가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실제 건축물과 속성이 동일한 디지털트윈모델을 가상공간에 매핑하면 3차원 입체 열교경로와 ‘열교 핫스팟’을 시각화해 착공 전 취약점을 바로잡는 ‘예측가능한 선제적 시공’이 가능해진다.
열교차단 자재기업들 역시 디지털트윈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스타빌엔지니어링의 관계자는 “설계자가 초기단계에서 열교영향을 직관적으로 평가하고 비용효율적인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도록 제품데이터를 BIM 객체로 표준화하고 라이브러리를 구축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비록 현장의 완전한 디지털화까지는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국책 연구기관이 표준 가이드라인을 수립하고 기업들이 기계가 읽을 수 있는 속성(Property)데이터를 제공한다면 실무진의 설계 부담은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정양 SG의 관계자 역시 “BIM과 에너지시뮬레이션을 연계해 지역별 기후조건과 구조에 적합한 자재를 제안하는 디지털체계와 함께 향후 실제 건물의 열류데이터를 지속 축적해 제품개발에 환류하는 선순환구조가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진·내화 안전성 입증 OSC·모듈러공법 ‘융합’
그동안 현장에서 열교차단재 도입을 가장 주저했던 원인은 자재의 성능 부족이 아닌 ‘구조적 안전성에 대한 심리적 불신’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콘크리트 골조나 외장재 지지 브라켓 부위에 이질적인 열교차단재를 삽입했을 때 횡력이나 지진 하중을 50년 이상 안전하게 지탱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주요 자재기업들은 수년간 국책 시험기관과 R&D 및 실물대 시험을 통해 완벽한 구조 안전성데이터를 축적하며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켜 왔다.
스타빌엔지니어링은 국토교통부 건축물 내진설계기준(KDS 41 17 00)에 근거한 엄격한 지진하중 거동시험을 KCL을 통해 수행했으며 진도 9의 강진에도 치장벽돌의 균열 및 낙하를 방지하는 내진성능과 구조 안전성을 공인받았다.
이비엠리더 역시 부산대학교 산학협력단 지진방재연구센터와의 협력을 통해 내진 열교차단 파스너의 반복하중 거동 신뢰성을 확보했으며 기존 트러스공법대비 공사비 절감과 30~40% 이상의 공기단축효과를 입증해 낸 바 있다.
티푸스코리아는 불에 타지 않는 철제 경량 트러스구조와 불연단열재인 글라스울을 절묘하게 융합한 ‘단열프레임’시스템을 통해 화재발생 시 고열로 인해 단열재가 소실되더라도 최소한의 구조적 안정성이 유지되는 독보적인 플랫폼을 완성하고 2~3층 규모의 커튼월 목업시험과 실물 화재시험 데이터까지 확보했다.
정양SG 또한 수십 차례에 걸친 실물 크기 구조시험과 유한요소 구조해석을 병행해 하중 증가에 따른 △응력분포 △변형 △균열 △파괴거동 등까지 정밀하게 검증해 냈다. 이를 통해 NEP(신제품 인증)을 비롯해 △조달우수제품 △혁신제품 등 공인인증을 획득하며 구조적 안정성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을 기술력으로 해소해 나가고 있다.
TB Block은 일반 콘크리트대비 압축강도가 최대 10배인 초고성능 콘크리트(UHPC) 프레임에 고성능 단열재를 일체화한 ‘열교차단 구조 블록’을 개발했다. 통제된 공장에서 초정밀 선제작(Precast) 후 현장에서 조립·체결만 수행하는 탈현장 건설(OSC) 방식을 통해 노동인력의 노령화와 숙련도 편차에 따른 시공 리스크를 줄이고 균일한 패시브급 품질을 상시 보증하는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여름철 역열교’ 대응, 탄소배출권 자산화 유인책
지구온난화로 인한 여름철 역대급 폭염과 혹서가 뉴노멀이 된 시대에 열교차단기술은 겨울철 난방에너지 절감을 넘어 여름철 실외 열기가 구조체를 타고 유입되는 ‘여름철 역열교’ 현상을 막는 기후 탄력형 건축의 핵심요소로 재정의되고 있다. 계절과 관계없이 냉난방부하 전체를 줄이고 겨울철 결로와 여름철 실내 과열을 동시에 제어하는 통합 외피시스템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는 시점이다.
해당 기술이 시장에 자연스럽게 안착하고 관련 업계가 자발적인 활기를 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 학계, 산업계가 각자의 이기주의를 내려놓고 건설적인 인센티브 생태계 구축이 시급한 상황이다.
단순히 몇 년도까지 규제기준을 맞추라는 강제성 위주의 정책은 현장의 피로감과 서류상 편법만을 양산할 수 있다. 대신 민간이 자발적으로 절감한 에너지와 탄소량을 디지털트윈과 IoT센서 기반으로 정밀 계측·검증(MRV)하고 이를 ‘탄소배출권 크레딧 자산’으로 발행해 거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녹색금융 모델이나 제도적 샌드박스 도입이 훌륭한 촉매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건설사와 발주처 역시 열교차단을 단순한 ‘추가 비용’ 프레임으로 바라보던 시각에서 벗어나 준공 후 수십년간 수백~수천만원에 달하는 재시공 하자 보수 리스크를 원천 차단하고 건물의 자산가치를 극대화하는 ‘생애주기 관점의 필수 투자’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한국패시브건축협회의 관계자는 “열교차단은 마감재 뒤에 숨어 눈에 보이지 않고 그 효과는 수년이 지나 결로와 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형태로 증명되는 기술”이라며 “탄소중립과 ZEB 의무화라는 흐름 속에서 서류상 합격을 넘어 재실자의 건강과 쾌적성을 담보하는 실질적인 성능 구현이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재 ‘ZEB 3등급 공동주택 핵심기술개발 연구단(주관기관 이화여대)’의 KCL, 아주대, 인하대 연구를 통해 국내 공동주택 환경에 적합한 2D·3D 수치해석 시뮬레이션 KS표준(안)과 실물 크기 목업 챔버 평가절차가 체계적으로 구축되고 있는 점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측정할 수 있고 검증된 데이터가 표준 도면집으로 보급될 때 현장의 심리적 장벽은 도미노처럼 무너질 것이다.
결국 열교차단은 단순한 에너지절감요소가 아닌 건축물의 장기적인 가치와 주거 쾌적성을 확보하는 기본적인 건축품질의 문제다. 선진국 수준의 기후탄력형 건축물을 완성하고 탄소중립 목표를 실효성 있게 달성하기 위해 이제는 민·관·학이 실무 인프라 구축과 제도적 연계에 힘을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