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대형 건설사들이 AI 데이터센터(AI DC)를 겨냥해 조직과 인력을 빠르게 재편하고 있다. 과거 데이터센터 프로젝트가 수주될 때마다 건축·기계·전기·설계·조달조직이 협업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사업개발부터 프리콘(Pre-Construction), 설계, 조달, 시공, MEP(Mechanical·Electrical·Plumbing), 커미셔닝까지 전 과정을 전담하는 조직을 갖추는 방향이다.
SK에코플랜트가 ‘AI DC사업단’을 출범시킨 데 이어 SK에코엔지니어링과의 합병을 결정했다. 현대건설과 대우건설도 데이터센터 전담조직을 정식 조직 또는 TF 형태로 구축했다. GS는 건설사 내부 조직을 넘어 그룹 차원의 AIDC 전담법인을 세웠다. 삼성물산은 이미 2020년부터 데이터센터 전담팀을 운영하며 기술과 수행경험을 축적해 왔다.
건설사들이 동시에 AI DC 조직 강화에 나서는 배경에는 시장규모 확대만 있는 것이 아니다. AI서버의 고밀도화로 데이터센터 기술구조 자체가 바뀌면서 건축공사보다 전력·냉각·배관·제어를 통합하는 MEP 엔지니어링 역량이 프로젝트 성패를 좌우하는 구조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8.4GW에서 18.4GW 확대 ‘AI DC’, 대형 비주택시장 급부상
정부가 지난 6월 발표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는 건설사의 움직임에 기름을 부었다.정부는 SK·GS·네이버와 협력해 1단계로 SK 5GW, GS 2.4GW, 네이버 1GW 등 총 8.4GW 규모의 AI DC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투자유치를 포함해 2029년까지 약 550조원을 투자하고 이후 SK의 AI DC를 5GW에서 15GW로 확대해 2035년 총 18.4GW까지 늘린다는 구상이다. 전체 투자규모는 약 1,000조원으로 제시됐다.
여기에는 GPU와 서버 등 IT장비, 전력망과 발전인프라, 데이터센터 건설 및 각종 설비투자가 모두 포함돼 있다. 이에 따라 550조원이나 1,000조원을 그대로 ‘건설시장 규모’로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럼에도 18.4GW가 현실화될 경우 데이터센터 건축과 MEP, 전력·냉각설비, 배관, 제어, 커미셔닝 등 국내 건설·설비산업에 미칠 파급력은 상당할 전망이다. 특히 국내 대형 건설사 입장에서는 주택·정비사업의 경기변동성을 낮추면서 수년간 대규모 수주잔고를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비주택 사업축이라는 점에서 AI DC의 의미가 크다.
반도체 FAB와 발전플랜트, 초고층 건축물 등을 통해 확보한 특고압 수전, HVAC, 배관, BIM, 모듈러, 공정관리 및 커미셔닝 역량을 상당부분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건설사가 AI DC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배경이다.

SK에코플랜트, ‘사업단 신설→엔지니어링 합병’까지
가장 빠르게 조직을 재편하고 있는 곳은 SK에코플랜트다. SK에코플랜트는 지난 8월13일 ‘AI 데이터센터사업단’을 신설했다. 기존 여러 조직에 분산돼 있던 AI DC 관련 사업·기술·설계·조달·시공 기능을 통합해 급증하는 AIDC 구축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다.
단순한 시공조직 확대가 아니라 MEP 설계 완성도 향상과 설계 내재화, 공법 표준화를 추진해 다수의 AIDC 프로젝트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표준모델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SK에코플랜트는 8월27일 100% 자회사인 SK에코엔지니어링과의 흡수합병을 발표했다. 반도체 FAB와 AI DC 등 첨단 인프라시장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엔지니어링과 시공·사업관리 역량을 한 회사에 결집하겠다는 전략이다. 설계와 시공의 조직경계를 낮춰 반도체·AI EPC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의미다.
그룹 차원의 실행체계도 만들어지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 7월 CEO 직속 ‘AI DC 통합추진단’을 신설해 부지선정부터 사업개발, 엔지니어링·구축, 고객유치까지 AIDC사업 전 과정을 관리하도록 했다. SK그룹이 추진하는 15GW AI DC사업을 중심으로 통신·건설·에너지 등 계열사 역량을 결집하는 구조다.
SK에코플랜트는 현재 AWS와 SK그룹이 추진하는 울산 AI DC 구축에 참여하고 있으며 향후 SK가 전국으로 확대하는 대규모 AI DC 프로젝트에서 핵심 EPC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건설, 데이터센터를 ‘글로벌 에너지사업’으로
현대건설은 AI DC를 국내 건축사업이 아닌 글로벌 에너지·인프라사업으로 확대하려는 전략이 뚜렷하다. 올해 조직개편에서 데이터센터를 양수발전·해상풍력·SAF·수소·암모니아 등과 함께 미래 핵심사업으로 분류하고 전담조직을 구성했다. 이어 지난 3월 건축주택사업본부 내 ‘글로벌데이터센터팀’을 신설하면서 TF가 아닌 정규조직을 통해 해외 데이터센터시장 발굴에 나섰다.
수행경험도 강점이다. 현대건설은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 세종’과 용인 죽전 퍼시픽써니 데이터센터 등을 포함해 현재까지 총 17건 508MW 규모의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해외시장 진출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2월 일본 도쿄에 ‘현대E&C재팬’을 설립했으며 현지 특정건설업 허가 취득도 추진하고 있다. 일본 내 AIDC와 함께 원전·SMR 등 에너지 인프라 프로젝트까지 사업영역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현대건설의 전략에서 주목할 부분은 AI DC와 전력사업을 연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AI DC는 안정적인 대규모 전력공급이 선결조건인 만큼 데이터센터와 발전·원전·SMR 등 전력인프라를 하나의 사업모델로 묶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AI DC 확대에 따른 전력수요 증가를 고려해 플랜트사업본부 산하 발전사업 전담조직 신설도 검토하고 있다. AI DC를 ‘건축물을 짓는 사업’이 아니라 에너지를 생산하고 공급해 최종 AI 연산까지 연결하는 인프라사업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대우건설, 전담TF 앞세워 ‘시공사서 디벨로퍼로’
대우건설도 지난 4월 ‘데이터센터 TFT’를 출범시켰다. 전담조직의 목적부터 단순 수주영업과 다르다. 데이터센터 설계·시공을 비롯해 전기·기계 등 MEP 전문인력을 육성하고 부지매입과 인허가, 설계제안, 운영·관리까지 사업역량을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대우건설은 이를 통해 시공에서 개발·투자·운영을 아우르는 데이터센터 종합사업자로 사업모델을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건설사의 데이터센터 참여시점이 앞당겨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설계가 상당부분 진행된 후 건설사가 EPC 또는 시공사로 참여했다면 향후에는 사업 초기부터 부지와 전력, 인허가, 사업성, 설계, 원가와 기술 리스크를 함께 검토하는 프리콘 역량이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대우건설은 양재 데이터센터 수행경험을 확보했으며 현재 전남 장성 파인데이터센터를 시공하고 있다. 향후 국내외 데이터센터시장 확대와 함께 전문 파트너사 네트워크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GS, 내부 조직 넘어 ‘AI DC 회사’ 직접 설립
GS의 접근은 다른 건설사와 성격이 다르다. 그룹 차원에서 AI DC사업 자체를 새로운 사업으로 만들고 있다. GS는 지난 6월 100% 자회사 ‘GS AI인프라’를 설립했다. 데이터센터 설계·구축·운영·임대 등을 사업목적으로 하는 AI DC 전담법인이다.
GS가 가진 그룹 내 사업구조는 AI DC와 결합하기 유리하다. GS EPS와 GS E&R 등 발전계열사는 전력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GS건설과 자이C&A는 데이터센터 설계·시공 경험을 갖고 있다. GS칼텍스는 액침냉각유를 상용화하는 등 냉각분야에도 진입해 있다. 결국 발전–전력–냉각–개발–건설–운영을 그룹 안에서 연결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가 발표한 1단계 AI DC 프로젝트에서 GS는 2.4GW 규모를 담당하는 것으로 제시됐다. GS 역시 강원지역 2.4GW급 AIDC 구축사업을 공식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GS건설도 기술 공급망 확보에 들어갔다. 지난 8월 LS ELECTRIC과 AI DC 공동대응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차세대 직류(DC) 배전기술 개발에 협력하기로 했다. LS ELECTRIC은 향후 GS건설이 추진하는 데이터센터에 배전솔루션과 초고압변압기·GIS 등 주요 전력기기를 공급하는 협력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AI DC 수주경쟁이 건설사 자체 기술뿐만 아니라 전력·냉각·배관 전문기업과 어떤 공급망을 구축했는지까지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삼성물산, 2020년부터 전담팀…‘선행투자 효과’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최근 조직을 만드는 경쟁사들과 달리 데이터센터 전문조직을 일찍부터 운영해 왔다. 2020년 국내 건설사 최초로 데이터센터사업 전담팀을 구성했다. 영업·설계·조달·시공뿐만 아니라 운영분야까지 전문가를 배치해 사업 전 과정에 대응하는 조직을 구축했다. 이를 기반으로 프리콘과 설계최적화, 데이터센터 사업성 검토, 디지털기술 등 관련 역량을 축적해 왔다.
특히 데이터센터 냉각기술도 직접 개발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국내 기업 데이터빈과 액침냉각시스템을 공동 개발해 OCP기준에 부합하는 기술을 확보했으며 데이터센터 설계·시공뿐만 아니라 핵심 인프라까지 공급할 수 있는 사업모델을 추진하고 있다.
안산 글로벌 클라우드센터의 경우 설계단계부터 프리콘서비스를 수행한 뒤 약 4,000억원 규모 시공계약까지 확보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FAB와 HPC센터 등을 수행하며 확보한 초고용량 전력·공조·클린룸·공정관리 경험을 AIDC에 접목할 수 있다는 점 역시 경쟁력으로 평가된다.
한화·DL도 ‘시공실적+기술’ 축적
후발 건설사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한화 건설부문은 최근 기후에너지환경부와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이 추진하는 총 438억원 규모 AIDC 에너지효율화 연구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데이터센터 수요자원화, 고효율 모듈형 UPS, 고밀도 AIDC용 직접액체냉각(DLC) 등 3개 분야에서 현장적용과 실증을 수행하며 건축·시공 경험을 전력과 냉각기술로 확대하고 있다.
DL건설도 지난 5월 1,268억원 규모의 ‘부천 삼정 AI 허브센터’를 수주했다. 약 9.8MW 규모 AI DC로 모듈화 시공과 액체냉각 적용을 계획하고 있다. DL건설은 상암·가산·부천 등의 프로젝트를 통해 데이터센터 수행경험을 확대하고 있다.
건설사간 경쟁이 조직 확보를 넘어 실제 AI DC 수행기술을 얼마나 빨리 축적할 수 있느냐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왜 건설사가 AI DC에 몰리나
최근 건설사들의 행보를 단순히 ‘AI 특수에 올라타는 신사업 경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우선 사업 포트폴리오 변화가 필요하다. 국내 대형 건설사는 오랫동안 주택과 도시정비사업 비중이 높았다. 분양경기와 금리, 부동산정책에 실적이 영향을 받는 구조에서 장기간 대형 수주잔고를 확보할 수 있는 데이터센터·반도체·배터리 등 첨단산업시설은 사업 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비주택 성장축이다.
AI DC는 기존 건설사의 기술자산을 활용하기에도 적합하다. 반도체 FAB와 발전소, 초고층건축을 수행하면서 축적한 특고압 전력, 비상발전, HVAC, 배관, 제어, BIM, 모듈러, 커미셔닝 역량을 AI 인프라에 확장할 수 있다.
사업영역 역시 넓다. 단순 시공에 머물 경우 준공과 함께 매출이 끝나지만 사업개발단계에서 참여하면 프리콘·설계·조달·EPC로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 투자와 운영까지 참여하면 데이터센터 운영기간 동안 장기수익을 확보하는 디벨로퍼 모델도 가능하다. GS와 대우건설 등이 데이터센터의 개발·투자·운영을 강조하는 배경이다.
AI DC 수주전, 결국 ‘MEP 통합력’이 좌우
건설사의 AI DC 경쟁에서 가장 큰 변화는 건축과 MEP의 위상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AI GPU의 전력밀도가 증가할수록 데이터센터 성능을 좌우하는 것은 건물 외관이나 구조가 아니다. 전력을 얼마만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지, GPU가 발생시키는 열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지, 서버와 CDU, 냉각설비와 배관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전력에서는 변전소와 특고압 수전부터 변압기·GIS·UPS·BESS·비상발전·버스웨이·랙까지 하나의 계통으로 접근해야 한다. 냉각에서는 기존 칠러·냉각탑·CRAH에 더해 DLC, 콜드플레이트, CDU, 열교환기, 드라이쿨러, 펌프와 제어가 서버까지 연결된다.
배관 역시 기존 기계설비의 부속공종에서 벗어난다. 고밀도 액체냉각에서는 냉각수 수질과 부식, 입자, 배관청정도, 압력, 유량, 밸브와 QD(Quick Disconnect), 누수감지 등이 GPU 안정성과 직접 연결된다.
마지막은 커미셔닝이다. 서버·전력·CDU·냉각설비·배관·제어가 각각 정상작동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전이나 펌프·CDU 장애, 유량저하와 온도상승 등 실제 고장조건에서도 시스템 전체가 정상적으로 대응하는지를 독립적인 커미셔닝 조직 및 발주자와 함께 통합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AI DC는 기존 건설업의 공종별 분업체계를 흔들고 있다.
건축팀이 건물을 설계하고 전기팀과 기계팀이 각자의 설비를 넣은 뒤 마지막에 시스템을 연결하는 방식보다 GPU와 IT부하를 출발점으로 전력과 열을 동시에 설계하는 통합 엔지니어링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건물 짓는 회사’에서 ‘AI 인프라 통합기업’으로
SK에코플랜트의 AI DC사업단 신설과 SK에코엔지니어링 합병, 현대건설의 글로벌데이터센터팀, 대우건설의 데이터센터 TFT, GS의 AI인프라 전담법인 설립은 건설업의 변화가 이미 조직 차원에서 시작됐음을 보여준다.
향후 정부의 18.4GW AIDC 계획이 실제 발주로 이어질수록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과거 데이터센터를 몇 곳 지어봤는지만으로 경쟁력을 판단하기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차세대 GPU의 전력·열밀도 변화에 대응해 △전력계통 △액체냉각 △CDU △배관 △수질 △제어 △모듈러·프리팹 △커미셔닝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설계하고 이를 여러 현장에 표준화해 반복 구축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건설사가 직접 모든 기술을 보유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전력·냉각·배관·제어 전문기업과 사전에 검증된 공급망을 구축하고 각 시스템 사이의 인터페이스를 책임질 수 있는 통합능력이 핵심이다. 결국 AIDC 확대는 건설사에 새로운 건축시장을 하나 더 만들어 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건설사의 역할을 ‘건물을 짓는 시공사’에서 전력과 열, IT 인프라를 통합하는 ‘AI 인프라 엔지니어링기업’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18.4GW 시대의 AIDC 수주전은 조직과 인력 확보에서 시작됐지만 최종 승부는 MEP 통합설계와 기술 공급망, 그리고 이를 실제 성능으로 구현하는 엔지니어링 역량에서 갈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