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3일 마곡코엑스에서 칸 창간 11주년 특별 컨퍼런스 ‘All That ZEB 2026’이 개최됐다. 국토안전관리원의 공동주최로 마련된 1-1세션에서는 ‘녹색건축 정책 및 제도’를 주제로 △ZEB 제도 현황 및 계획(박상구 한국에너지공단 녹색건축센터장) △민간건축물 GR 활성화(이상엽 국토안전관리원 GR창조센터 차장) △건축물 전과정 탄소평가(LCA) 제도화와 ZEB·녹색건축 적용전략(송두삼 대한건축학회 탄소중립건축원장) △GR활성화&기존 GR 한계를 넘는 新 패러다임 디지털 그린리모델링(강재식 디지털 그린리모델링 연구단장) △건물부문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 전략(윤소원 온실가스정보센터 연구원) △연탄에서 가스로, 이제는 전기로 커먼즈 종암이 만드는 ‘아파트에너지시스템 3.0’(이원형 커먼즈 대표) 등 발표가 진행됐다.
이상엽 국토안전관리원 차장은 인사말을 통해 “탄소중립과 기후위기대응은 국가과제를 넘어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결정하는 핵심명제로 부상하고 있다”라며 “이에 따라 국토교통부, 국토안전관리원, 한국에너지공단에서는 건물분야 제로에너지건축물(ZEB)과 민간건축물 그린리모델링(GR)을 활용한 정책들을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공공건축물에 대해서는 에너지효율을 높이고 쾌적하고 안전하게 발전시키기 위해 그린리모델링을 진행하고 있으며 민간영역까지 그린리모델링이 자발적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정책과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 힘쓰고 있다”라며 “ZEB와 GR사업을 위해 기술지원, 컨설팅, 품질관리를 더 확대해 대한민국이 탄소중립 국가로 도약할 수 있도록 노력을 이어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도심·초고층 한계 극복 위한 ‘대지 외 재생E’ 제도화 추진할 것”
박상구 한국에너지공단 건물에너지처 녹색건축센터장은 ‘ZEB 제도 현황 및 계획’을 주제로 발표하며 건물부문 2030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해 신축 건물의 ZEB 의무화를 가속화하고 현장여건을 고려한 실효성 있는 규제 개선 및 지원체계를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2030년까지 2018년대비 국가 온실가스 40% 감축이 요구되는 가운데 건물부문은 2018년 배출량 5,210만톤대비 32.8%를 줄인 3,500만톤 달성을 목표로 설정했다. 건물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은 최종에너지 사용량 기준 약 25%를 차지하는 만큼 신축 건물의 에너지성능 확보가 필수적인 상황이다.
박상구 센터장은 “2025년부터 국토교통부와 기후부 공동부령을 통해 기존 ‘건축물 에너지효율등급제’와 ‘ZEB 인증제’를 통합 운영하고 있다”라며 “17개 공공건축 용도 1,000m² 이상에 대해 의무등급을 기존 5등급에서 4등급으로 상향했으며 에너지자립률 120% 이상을 충족하는 ‘플러스(+) 등급’을 신설해 고성능 녹색건축 확산을 유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간부문 역시 30세대 이상 공동주택과 1,000m² 이상 건축물을 대상으로 ZEB 5등급 수준(에너지자립률 약 13%)에 준하는 설계기준 강화가 병행 적용 중이다.
이에 힘입어 ZEB 인증실적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20년 1,000m² 이상 공공 의무화 시행 당시 505건 수준이던 인증 건수는 2023년 500m² 이상 확대 이후 2025년 한 해에만 2,724건을 기록했다. 2026년 7월 기준 누적 인증실적은 예비인증 7,756건, 본인증 3,706건 등 총 1만1,462건에 달한다. 건물 용도별로는 △교육연구시설(33%) △업무시설(12%) △주거시설(7%) 순으로 높았으며 지역별로는 △경기(1,897건) △경남(870건) △경북(828건) △강원(775건) △서울(715건) 순으로 집계됐다.
박 센터장은 도심지 및 고밀도 건축물에서 발생하는 ZEB 고등급 취득 애로사항을 집중 지적했다. 통상 ZEB는 △패시브(부하 최소화) △액티브(효율 극대화) △신재생(자립률 극대화) 등의 단계를 거치나 건폐율이 낮고 용적률이 높은 도심지 빌딩이나 초고층 건축물은 연면적대비 옥상 가용면적이 턱없이 부족해 자체 태양광발전설비만으로는 상향된 4등급(에너지자립률 40% 이상) 충족이 어렵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에너지공단은 ‘대지 외(Off-site) 재생에너지 인정 제도’ 도입을 본격 추진할 계획다. 도심지 음영지역이나 초고층 건축물을 대상으로 △원격 발전설비 설치 △직접·제3자 PPA(전력구매계약) △녹색프리미엄 요금제 등 RE100 이행 수단을 ZEB 에너지자립률 산정에 대체 인정해 주는 방안이다.
에너지공단은 오는 2027년까지 3개소 내외의 시범사업을 거쳐 △조달계수 △신청-평가-인증 절차 △사후관리 기준 등을 정립하고 관련 법규정 개정을 통해 제도화를 완료할 계획이다.
국내 건축물의 82.5%를 차지하는 500m² 미만 소규모 건축물의 자발적 시장 참여방안도 제시됐다. 에너지공단은 △단독주택 △소형 업무시설 △근린생활시설 등 건물 유형별로 패시브·액티브·신재생 최적 기술조합과 경제성 분석을 담은 표준 가이드라인을 개발해 배포하고 건물에너지관리시스템(BEMS) 의무항목 등 평가기준을 간소화해 민간 소형 건물의 ZEB 진입장벽을 낮출 방침이다.
이에 더해 에너지공단은 기획·설계 단계부터 공사비 증가를 억제하는 ‘에너지 최적화 컨설팅’을 무료 지원하고 있다. 용적률·건축높이 완화(최대 15%), 취득세 감면(15~20%), 보금자리론 우대금리(0.1%p), 신재생 설치보조금 우선 지원 등 각종 인센티브 취득을 밀착 안내해 사업자의 경제적 부담을 덜고 있다. 또한 온라인 ‘ZEB 스킬업(Skill-Up)’ 플랫폼을 가동해 연간 1,200명 이상의 설계·해석 실무인력을 지속 양성 중이다.
박상구 센터장은 “2026년 9월 분리 시행되는 재생에너지법 및 수소법, 공기열 히트펌프의 재생에너지 인정 추진 등 에너지정책 변화와 발맞춰 건물부문의 전기화와 고효율 히트펌프 보급이 가속화될 것”이라며 “대지 외 재생에너지 도입과 소규모 건축물 기준 정비를 차질 없이 완수해 현장의 규제 부담을 덜고 실효성 있는 녹색건축 생태계를 안착시키겠다”고 강조했다.
“민간 GR 이자지원 200억 확대… 직접지원 전환 검토할 것”
이상엽 국토안전관리원 차장은 ‘민간건축물 그린리모델링(GR) 활성화’를 주제로 발표하며 고금리로 중단됐던 민간 이자지원사업의 재개현황과 비주거부문 대출한도 대폭 확대, 신규 무료 컨설팅 도입 등 활성화 방안을 공유했다. 또한 향후 보조금 등 직접 지원 방식으로의 패러다임 전환 필요성도 제시했다.
민간건축물 그린리모델링 이자지원사업은 2014년 출범 후 10년 넘게 이어져 온 대표적인 민간 녹색건축 지원제도다. 2021년 연간 사업규모 1,525억원을 기록하는 등 활성화됐으나 시중 금리 급등으로 2023년 11월 신규 접수가 중단됐다가 올해 3월 지원 혜택을 대폭 늘려 재개됐다.
이상엽 차장은 “대한민국 전체 건축물 약 742만동 중 공공이 소유한 20만동을 제외한 700만동 이상(약 96%)이 민간 소유”라며 “신축과 달리 기존 민간건물에 그린리모델링을 강제할 수 없는 만큼 실효성 있는 금융 및 행정 지원을 통해 자발적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재개된 이자지원사업은 비주거부문과 취약·우대계층에 대한 지원 문턱을 대폭 낮춘 것이 특징이다. 공사비 대출한도의 경우 공동주택 3,000만원, 단독주택 1억원을 유지하면서 비주거부문은 기존 50억원에서 최대 200억원까지 대폭 상향했다.
에너지성능개선 비율이 20~30% 미만이면 4.5%, 30% 이상이면 5.5%의 이자를 국가가 최장 10년간 보전한다. 차상위계층, 신혼부부, 다자녀가구, 고령자, 국가유공자 등에게는 성능개선 비율과 무관하게 5.5% 우대금리를 지원한다.
지원대상은 준공 후 10년 이상 경과한 민간건축물의 소유자로 주거용 건물의 대출대상 기준 가격은 기존 9억원에서 12억원 이하로 완화됐다. 공사범위 역시 고성능 창호·단열재뿐만 아니라 △고효율 냉난방·보일러 △배열회수형 환기장치 △LED 조명 △태양광·지열 △건물에너지관리시스템(BEMS) 등은 물론 철거·석면제거·구조보강·도배까지 부대공사 비용까지 폭넓게 인정된다. 대출자가 중도 상환할 경우 발생하는 해약금(수수료) 전액도 국가가 정산·지급한다.
GR 이자지원사업은 KB국민·신한·우리·NH농협·IBK기업·제주은행 등 6개 금융기관과 협약해 운용 중이며 하반기에는 전북은행, 경남은행 등 지방은행과 추가 협약을 통해 지역 밀착형 지원을 넓힐 방침이다.
이 차장은 과거 실적의 편중현상에 대해서도 짚으며 “2014년 이후 누적 8만여건의 실적을 달성했으나 약 98%가 공동주택에 집중돼 현장에서는 단순 창호교체사업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했다”라며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단독주택과 꼬마빌딩, 대형 호텔 등 비주거 건축물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올해 30억원 규모의 ‘민간 GR 맞춤형 컨설팅 지원사업’을 신설했다”고 밝혔다.
컨설팅사업은 ‘기획·계획 단계(공사 전)’의 사전진단형 ‘예비 컨설팅’과 ‘설계·시공 단계(공사 완공까지)’의 이자지원 연계형 ‘본 컨설팅’으로 나뉜다. 국토안전관리원의 전문 수행기관이 현장을 방문해 △구조안전점검 △에너지 시뮬레이션 △예상 공사비 산출 △투자회수기간 분석 등까지 전 과정을 무료로 제공한다. 공사비 산출은 국가 조달청 표준 발주기준을 적용해 투명성을 확보했다.
현재 예비 컨설팅은 신청 접수 250건을 돌파하며 조기 마감을 앞두고 있다. 단독주택과 근린생활시설뿐만 아니라 수십 동의 노후건물을 보유한 부산·나주 지역 사립대학 캠퍼스 등의 대규모 신청이 잇따르고 있다.
이상엽 차장은 향후 지원체계의 근본적인 개편방향도 제시했다. 이 차장은 “이자지원은 대출절차와 금융기관 방문 등 행정적 허들이 존재해 민간 건축주가 느끼는 번거로움이 있었다”라며 “전기차나 히트펌프처럼 민간 건축주가 실질적인 혜택을 체감할 수 있도록 국토교통부와 함께 직접 보조금을 교부하는 ‘직접 지원 방식’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으며 조만간 가시적인 대책을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LCA제도화, 2028년 표기의무 거쳐 상한 규제 도입해야”
송두삼 대한건축학회 탄소중립건축원장(성균관대 교수)은 ‘건축물 전과정 탄소평가(LCA)제도화와 ZEB·녹색건축 적용전략’을 주제로 발표하며 현행 운영에너지 중심의 건물 온실가스 산정체계의 한계를 지적하고 자재 생산부터 시공·폐기까지 포함하는 전과정평가(LCA) 도입 로드맵과 탄소배출량 표기제(라벨링) 시행을 촉구했다.
송두삼 원장은 “제도가 성공적으로 안착하려면 탄소감축 활동을 통해 시장 참여자가 실질적인 편익을 얻는 비즈니스모델이 형성돼야 한다”라며 “글로벌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과 유럽연합(EU)의 건물에너지성능지침(EPBD) 개정 등 국제 규범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건축물 생애주기 전체의 탄소를 다루는 LCA는 선택이 아닌 필수 생존전략”이라고 진단했다.
현재 국내 건물부문 탄소중립정책은 △신축 ZEB 의무화 △기축 GR △서울시 온실가스 총량제 등 3대 축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송 원장은 이들 정책 모두가 △냉난방 △급탕 △조명 △환기 등 운영단계 에너지소비에서 발생하는 ‘운영탄소’만을 평가하고 있다는 점을 근본적인 맹점으로 꼽았다.
송 원장은 “에너지성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단열재, 고성능 창호, 신재생 설비 등 고사양 자재를 투입할수록 자재 생산(A1~A3), 운송(A4), 시공(A5)단계에서 발생하는 ‘내재탄소’는 급증한다”라며 “운영탄소만 평가하는 현행 체계는 대규모 리모델링을 반복할수록 내재탄소가 제도 밖에서 누적되는 ‘탄소 누수’를 유발하며 실제 감축성과를 과대평가하게 만든다”고 짚었다.
실제 시립 시흥 대헌어린이집의 공공 그린리모델링 사례를 국제표준(EN 15978) 기반 ‘원클릭(One Click) LCA’ 프로그램으로 분석한 실증결과도 공개됐다. 현행 방식대로 에너지소요량 절감률만 보면 28.7% 줄어든 것으로 평가되지만 초기 투입된 내재탄소(1만4,544kgCO₂e)와 해체·재활용 편익(C~D)을 모두 반영한 30년 전과정 탄소 감축률(CRR)은 23.7%로 나타나 약 5.0%p의 과대평가가 발생했다.
특히 초기 투입된 내재탄소의 약 47%는 에너지집약도가 높은 알루미늄 복층창과 도어·핸드레일 등 창호 계열에서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단열재의 내재탄소 기여도는 780kgCO₂e 수준으로 미미해 운영에너지 절감효과가 훨씬 큰 것으로 분석됐다. 리모델링을 통해 연간 2,671kgCO₂e의 운영탄소를 절감함으로써 초기 내재탄소 투자를 회수하는 ‘탄소상환기간’(CPP)은 5.45년으로 도출됐다.
송 원장은 글로벌 규제 추세를 소개하며 선제적 대응을 주문했다. EU는 2024년 4월 개정된 EPBD에 따라 2028년 1,000m² 초과 신축 건축물, 2030년 모든 신축 건축물에 대해 전과정 온난화잠재력(GWP) 산정 및 공개를 의무화했다. 덴마크(연간 12kgCO₂e/m²), 프랑스(RE2020), 네덜란드 등은 이미 건물 단위면적당 탄소 배출 상한선(Cap)을 설정해 설계기준을 강제하고 있으며 일본 역시 2028년부터 1만m² 이상 건축물의 탄소배출량 표기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송 원장은 3단계로 구성된 국내 건축물 LCA 의무화 로드맵을 제안했다. 1단계(2026~2027년)는 EN 15978에 부합하는 국내 건축물 LCA 산정 표준을 제정하고 건설자재 EPD(환경성적표지) 및 국가 LCI DB를 확충하며 공공 시범사업을 추진한다.
2단계(2028~2029년)에는 일정 규모 이상 공공 신축 및 그린리모델링에 대해 LCA 산정을 의무화하고 건축물대장과 사용승인에 내재탄소·운영탄소를 분리 라벨링하는 ‘탄소배출량 표기제’를 도입한다. 3단계(2030년~)에는 용도·규모별 전과정 탄소 한계값(Cap)을 설정해 민간 신축 전면 확대 및 온실가스 총량제와 연계한다는 구상이다.
송두삼 원장은 “글로벌시장에서는 이미 검증된 데이터베이스(DB)와 제3자 검증을 거친 표준 방법론이 통용되고 있는 만큼 국내에서도 독자적 프로그램 개발에 매몰되기보다는 국제 표준 정합성을 갖춘 체계를 신속히 구축해야 한다”라며 “공공건축물과 그린리모델링부터 LCA와 탄소라벨링을 도입해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데이터를 확보하고 향후 총량제와 ZEB를 포괄하는 종합적인 탄소관리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BIM 디지털플랫폼 활용, GR 소요시간 대폭 단축
강재식 디지털그린리모델링 연구단장(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GR 활성화&기존 GR 한계를 넘는 新 패러다임 디지털 그린리모델링’을 주제로 발표하며 아날로그방식에 머물러 있던 기존 GR의 한계를 극복하고 인공지능(AI)과 건물정보모델링(BIM) 기반의 디지털 자동화 플랫폼을 통해 산업 생태계를 혁신하겠다고 강조했다.
강재식 연구단장은 “리모델링과 그린리모델링의 차이는 ‘그린’이라는 접두사 하나이지만 이는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효율 개선이 전제돼야 함을 의미한다”라며 “하지만 2022년 이후 공공부문에서 3,000건 이상의 사업이 추진되는 동안 현장에서는 노후건물의 이력 정보 유실, 도면 부재, 서류 중심의 단절된 프로세스 등 고질적인 문제가 반복돼 왔다”고 지적했다.
강 단장은 현행 아날로그 진단·설계방식의 구조적 비효율을 짚었다. 현장 진단결과는 종이 보고서 형태로 캐비닛에 보관되기 일쑤이고 에너지평가사가 시뮬레이션을 거쳐 대안을 제시하더라도 시공과정에서 자재나 설계가 변경되면 이를 재반영해 평가·내역을 수정하는 데 막대한 시간과 외주비용이 소모된다는 설명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공사비와 성능에 대한 불확실성은 건축주가 리모델링 의사결정을 내리기까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수년이 걸리게 만드는 최대 장애물로 작용해 왔다.
연구단이 개발 중인 ‘디지털 그린리모델링 통합 플랫폼’은 이러한 기획·진단·설계·시공·유지관리 전 과정을 하나의 원스톱 디지털 프로세스로 통합한다. 현장에서는 도면이나 서류없이 모바일·태블릿으로 준공연도별 에너지설계기준을 바탕으로 사전에 예측된 성능값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단이 이뤄진다. 입력된 수치는 0.3초 만에 에너지시뮬레이터와 2D·3D 자동설계엔진으로 자동 연동된다.
특히 설계대안에 따라 창호 등 자재가 변경되면 형상 정보(IFC)와 품목 정보가 실시간으로 매칭돼 △에너지성능값(ECO2) △물량산출서 △상세 내역 공사비 △인허가 수준의 도면(LOD 3~4) 등이 자동으로 갱신된다. 연구단은 이를 통해 통상 장기간 소요되던 진단·설계 및 의사결정 시간을 기존대비 3분의 1(66% 절감) 수준으로 단축하고 모델링 오차율을 20% 이내로 제어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도시단위의 데이터 기반 행정지원체계도 구축됐다. 디지털그린리모델링연구단은 △전국 건축물대장 △공간정보(V-World) △에너지사용량데이터 등을 탑재한 3D 기반 ‘GR-MAP’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지자체는 관내 노후건물의 △열성능 △탄소배출량 △인접 건물 음영 등을 반영한 실제 태양광 발전 잠재량 등을 단 10분 만에 시각화해 분석하고 최적의 사업 후보군을 도출할 수 있다.
연구단은 11개소 이상의 실증 현장을 거쳐 기술검증을 진행해 왔다. 대표적으로 서울 30년 노후아파트를 제로에너지건축물로 탈바꿈시킨 G 공동주택을 비롯해 이천시 우곡보건진료소, 제주 화북 공공임대 노후주택 등에서 디지털진단과 자동화 모듈의 현장 적용성을 입증했다. 또한 현재 수도권을 중심으로 지자체 협업 미러 사이트(시범 플랫폼) 실증도 추진 중이다.
강재식 연구단장은 “기술이 아무리 우수해도 시장에서 통하려면 정부 조달가뿐만 아니라 수시로 변동하는 자재비와 인건비를 신속히 반영한 실질적인 예상 공사비가 제시돼야 한다”라며 “20여개 핵심모듈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디지털 플랫폼을 완성해 올 하반기 수도권 시범운영을 개시하고 민간과 공공이 신뢰할 수 있는 그린리모델링 신산업 생태계를 열어가겠다”고 밝혔다.
“2035 NDC 건물부문 56% 감축… 열E 탈탄소·HP 350만대 보급 추진할 것”
윤소원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 연구원은 ‘건물부문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 전략’을 주제로 발표하며 2030 NDC 이행 점검결과와 함께 2035 NDC 신규 목표치, 그리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열에너지 전기화 및 제도 혁신 방안을 제시했다.
윤소원 연구원은 “국내 건물 연면적은 연평균 3.0%씩 꾸준히 증가해 2024년 기준 약 32억4,000만m²에 달하며 가정(61.3%)과 상업(26.9%)부문이 전체의 88.2%를 차지하고 있다”라며 “건물부문 에너지소비량은 국가 전체의 22.4%에 달해 연평균 2.1%씩 늘고 있으나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 통계상 전력·열 생산에 따른 간접배출이 전환부문으로 분류되면서 직접배출 기준 비중은 국가 총배출량의 6.3% 수준으로 집계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2030 NDC 이행 현황과 관련해 윤 연구원은 “건물부문 직접배출량은 2018년 정점(5,210만톤) 이후 연평균 2.9%씩 감소해 2024년 잠정배출량은 목표치(4,700만톤)보다 380만톤 적은 4,320만톤을 기록하며 매년 감축 목표를 초과 달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배출량 요인분해 분석결과에 따르면 가구 수 증가(+550만톤)와 가구당 면적 증가(+60만톤) 등 증가요인이 있었으나 에너지원단위 개선(-980만톤)과 탄소집약도 완화(-510만톤) 효과가 이를 상쇄하며 2018년대비 총 880만톤의 순감축을 이뤄냈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향후 감축경로는 한층 가팔라질 전망이다. 2018~2024년 연간 감축률은 2.9% 수준이었으나 2030년 목표(3,500만톤, 32.8% 감축)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연 3.6% 감축이 필요하다. 이에 더해 정부가 수립한 ‘2035 NDC’ 시나리오에 따르면 2018년대비 53.6%(2,420만톤)에서 최대 56.2%(2,280만톤)까지 줄여야 해 2030년부터 2035년까지는 연평균 7.1~8.2%라는 전례 없는 속도로 감축을 단행해야 한다.
윤 연구원은 유럽연합(EU)과 일본 등 주요국의 강력한 규제 정책을 짚으며 한국 역시 획기적인 이행 수단을 본격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U는 개정 건물에너지성능지침(EPBD)을 통해 2030년 신축 민간건물 ZEB 의무화, 2040년 화석연료 보일러 퇴출, 히트펌프 3,000만대 보급을 추진 중이며 독일은 신규 난방의 65%를 재생에너지로 강제하는 등 강력한 페널티와 보조금을 병행하고 있다. 일본 역시 2030년까지 히트펌프 1,600만대 보급을 선언하고 공격적인 재정 지원을 펼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35 NDC 달성을 위한 3대 핵심 이행수단으로 △건물에너지성능 강화 △열에너지 혁신 △건물배출량 수요관리 지원 등을 제시했다.
먼저 ZEB의 경우 2035년까지 공공건축물은 전면 3등급, 민간 건축물은 4등급 수준으로 의무 기준을 대폭 끌어올리고 기축건물 그린리모델링은 매년 기축 연면적의 3%씩 의무화를 확대할 계획이다.
열부문에서는 건물 난방·급탕에 쓰이는 화석연료 비중을 2024년 41%에서 2035년 27~29% 수준으로 대폭 낮추기 위해 연 5.6~6.2%씩 감축을 추진한다. 기존 화석연료 보일러를 고효율 전기히트펌프로 전환해 약 350만대 규모의 히트펌프를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4월 발표된 ‘열에너지혁신전략’을 토대로 △‘(가칭)열에너지 관리 및 탈탄소화 촉진법’ 제정 △국가 열지도 구축 △재생열 인증체계 △거래 플랫폼 구축 △스마트 계량 가이드라인 수립 등 종합 인프라를 정비 중이다.
또한 서울시 온실가스 총량제 등 지자체별 총량 관리 제도를 안착시키고 국민 행동변화와 연계해 냉난방 온도 조절 및 절감실적에 따른 인센티브를 다각화해 15% 수준의 수요절감을 유도할 방침이다.
윤소원 연구원은 “건물부문의 탄소중립 경로는 기존의 완만한 선형 감축을 넘어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반드시 가야 하는 목표 지향적 경로로 전환됐다”라며 “화석연료 보일러의 단계적 축소와 전기히트펌프 중심의 열에너지 대전환, 그리고 ZEB·그린리모델링의 질적 도약을 뒷받침할 제도와 재정 연계를 통해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차질 없이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아파트 전동화, 히트펌프 교체 넘어 시스템·거버넌스 전환 필요”
이원형 커먼즈 대표(종암동 개운산마을 가로주택정비사업조합 조합장)은 ‘연탄에서 가스로, 이제는 전기로 커먼즈 종암이 만드는 아파트에너지시스템 3.0’을 주제로 발표하며 공동주택 열원의 완전 전동화와 ZEB의 공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이원형 대표는 “서울 성북구 종암동은 1958년 최초의 현대식 아파트인 ‘종암아파트’(연탄보일러·아파트 1.0)가 세워졌고 1996년 재건축된 ‘종암선경아파트’(도시가스 개별보일러·아파트 2.0)를 거치며 주거 에너지전환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이라며 “종암선경아파트 인근에서 공사 중인 커먼즈 종암(130세대)은 2030년대 이후 도래할 전기기반의 ‘아파트 3.0’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현행 가스시대의 고착화된 ‘세대별 기기·세대별 최대부하·세대별 관리’구조를 전기시대로 그대로 복제하는 방식을 비판했다. 그는 “가스보일러를 세대별 공기열 히트펌프로 1대1 치환하는 것은 수백세대의 최대부하가 중복돼 잉여설비와 과잉용량이 발생하고 설비 제조·운반과정에서 막대한 탄소를 선지출하는 한계가 있다”라며 “진정한 전동화는 기기 보급을 넘어 단지 전체의 동시부하율을 반영한 중앙 집중형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커먼즈 종암은 열원을 세대 내부에서 완전히 분리하는 ‘아파트 2.5(통합배관 방식)’를 구축했다. 기계실의 가스 캐스케이드보일러를 통해 공급하되 장래에는 세대 배관 공사 없이 기계실 열원을 중앙 공기열 히트펌프로 교체하기만 하면 완전 전동화(아파트 3.0)로 전환될 수 있는 장수명 인프라를 선제 설계했다.
이에 더해 냉난방과 급탕을 일원화하고 복사냉방까지 구현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한국패시브건축협회와 협력해 △외단열 △열교차단재 △3중 시스템창호 △열회수환기장치 등 ‘패시브 퍼스트’설계를 적용했다.
이 대표는 도심 고밀도 아파트가 맞닥뜨린 ZEB 인증제도의 현실적 한계를 지적하며 “현행 인증기준에 맞춰 ZEB 5등급(자립률 20% 이상)을 취득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현실적으로 도심 고층 아파트가 옥상 태양광만으로 확보할 수 있는 자립률은 약 7%에 불과했다”라며 “용적률이 높아 층수가 올라갈수록 에너지수요는 수직으로 급증하지만 태양광을 얹을 지붕 면적은 그대로이거나 줄어드는 ‘고밀도의 역설’이 발생한다”고 짚었다.
도심지 특성상 민원과 부지 제약으로 지열 굴착이 어렵우며 도시가스를 개질하는 수소연료전지 역시 한계가 있어 태양광 외에는 뚜렷한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이 대표는 이러한 한계를 돌파할 해법으로 공간단위를 확장하는 ‘Zero Energy Block(ZEB 2.0)’ 개념을 제안했다. 개별 건물(Building) 단위에 얽매이지 않고 가로주택정비사업의 유연한 가로구역을 바탕으로 인접한 유휴 인프라와 에너지를 연계하는 방안이다. 커먼즈 종암은 단지 바로 옆에 위치한 서울개운초등학교 교사동 옥상에 태양광을 설치하고 단지 기계실의 대용량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연계하는 블록형 마이크로그리드를 구상 중이다.
이원형 대표는 “학교는 낮에 전력 수요가 집중되고 공동주택은 저녁과 야간에 수요가 몰려 상호 보완성이 매우 뛰어나다”라며 “교육부 ‘햇빛이음학교’사업처럼 유휴 옥상은 많지만 학교 측이 화재 우려나 방수, 유지관리 부담으로 기피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정비사업 조합이 초기 투자와 장기 안전관리를 도맡는다면 지자체·공공·주민이 상생하는 도심형 에너지블록을 실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기술을 완성하는 핵심열쇠로 ‘지속가능한 거버넌스’를 꼽았다. 이 대표는 “건물을 넘어 블록단위로 에너지를 생산·저장·공유하기 시작하면 설비의 30년 생애주기를 누가 유지관리하고 정산할 것인가라는 경영의 문제가 남는다”라며 “준공 후 해산되는 일반적인 재개발 조합과 달리 입주민 전원이 조합원으로 승계되는 ‘개운산마을 사회적협동조합’을 준공 전 설립 인가 중”이라고 밝혔다.
협동조합 정관에 에너지관리 및 지역협의체 운영근거를 명시해 단순 시설관리를 넘어 지속적인 ‘에너지경영’을 직접 수행할 주체를 제도화했다.
이원형 대표는 “아파트 3.0은 ‘기기에서 시스템으로’, ‘세대에서 블록으로’, ‘관리에서 거버넌스로’ 나아가는 총체적 전환”이라며 “커먼즈 종암은 완성된 모범답안이 아니라 가스시대의 관성을 깨고 도심 주거가 나아가야 할 차세대 에너지시스템의 기술적·제도적 경로를 온몸으로 실증하는 프로젝트”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