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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DC, ‘800V 직류’로 전력병목 줄인다

BCG·ABB, 하이브리드 전력 경제성 분석
100MW 모델서 IT전력 5~6MW 추가 확보

AI 데이터센터의 전력변환단계를 줄이는 800V 직류배전이 제한된 수전용량 안에서 연산용량을 확대하는 대안으로 제시됐다. 100MW급 데이터센터에 중앙집중형 직류 전력공급체계를 적용하면 전력망에서 서버랙까지의 전력공급 효율을 개선해 IT부하에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5~6MW 추가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ABB와 협력해 9월 발간한 ‘하이브리드 AC/DC 전력의 전략적 가치(The Strategic Case for Hybrid AC/DC Power)’ 보고서에서 데이터센터·산업시설·상업용 건물·주거용 건물의 직류 적용 경제성을 분석했다. 핵심은 기존 교류(AC) 전력망을 모두 직류(DC)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지역 배전망은 교류로 유지하면서 수용가 내부의 고밀도 부하와 발전·저장설비를 직류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이번 분석은 동등한 조건의 신축 교류시설과 직류시설을 비교해 초기투자비와 운영비 차이를 산출했다. 데이터센터에는 미국 북버지니아, 산업시설과 건물에는 유럽의 조건을 적용했으며 설비가격·전기요금·규제는 분석시점 수준으로 고정했다. 제시된 절감액은 이러한 조건을 적용한 비교모델의 산출값으로 실제 사업의 경제성은 지역별 전력요금과 계통요금, 공급신뢰도 등에 따라 달라진다.

 

교류망 유지하면서 수용가 내부 직류화

하이브리드 전력구조가 주목받는 배경에는 전력생산과 소비방식의 변화가 있다. 태양광은 직류로 발전하고 배터리는 직류로 전력을 저장하며 서버와 전기차도 내부적으로 직류를 사용한다. 이들을 교류배전망으로 연결하면 발전·저장·소비 과정마다 전력변환이 필요하다. 개별 변환단계의 손실은 작더라도 AI 데이터센터가 GW급으로 대형화되면 불필요한 변환에 따른 손실과 설비부담도 커진다.

 

BCG가 제시한 하이브리드 전력망은 세 계층으로 구성된다. 장거리·대용량 송전에는 고압직류송전(HVDC)을 활용하고 지역 배전에는 변압기와 기존 보호체계의 경제성을 갖춘 교류를 유지한다. 데이터센터·공장·건물 등 수용가 내부에서는 직류를 확대해 부하별 변환단계를 줄이고 배터리와 태양광의 연계를 단순화한다.

 

교류망과 내부 직류망은 계통연계용 변환장치로 연결한다. 계통연계 요건을 공통 접속점에서 관리하면서 시설 운영자가 내부 전력구성을 선택할 수 있는 구조다. 주변 전력망 전체를 재설계하지 않고도 전력수요가 밀집한 시설부터 단계적으로 직류 적용을 확대할 수 있다.

 

100MW AI DC, 전력·공간 확보… 수익성 좌우

직류 전환의 필요성이 가장 큰 분야는 고밀도 AI 데이터센터다. BCG는 엔비디아의 랙 로드맵을 근거로 AI 서버랙의 전력밀도가 2027년 약 600kW에 도달하고 2020년대 후반에는 1MW에 근접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력밀도가 높아질수록 기존 저압 교류배전으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도체와 변환설비의 부담이 커진다.

 

AI 학습은 다수의 프로세서를 가까이 배치하는 고도의 병렬처리를 요구한다. 좁은 공간에 전력수요가 집중되면서 랙 내부에서 전력변환장치나 에너지저장장치가 차지할 수 있는 공간도 줄어든다. 이에 대응해 랙 옆에 별도 전력모듈을 설치하는 ‘사이드카’ 방식이 등장했으며 다음 단계로 랙에 800V 직류를 직접 공급하는 구성이 제시됐다.

 

100MW급 기준모델에서는 전력변환을 중앙집중화하면 전력망에서 랙까지의 효율이 5% 개선됐다. 이를 통해 IT부하에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5~6MW 추가 확보하고 사이드카 설계와 비교해 약 3,000m²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전력손실 감소로 확보한 용량을 실제 서버 증설에 활용할 공간까지 마련하는 셈이다.

 

추가 IT용량을 수익으로 연결하는 시나리오에서는 연간 매출 약 9,200만달러, 영업이익 약 3,500만달러의 가치가 산정됐다. BCG는 “800V 직류의 핵심은 근본적으로 효율보다 용량에 있다”고 강조했다.

 

초기투자비도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리 사용량이 최대 45% 줄어드는 것이 가장 큰 절감요인이며 랙 단위 직류 보호장치의 높은 가격이 일부 상쇄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를 반영한 초기투자비 순절감액은 350만~600만달러다.

 

추가 확보용량을 충분히 수익화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전력변환 손실 감소에 따른 연간 약 350만달러의 운영비 절감효과가 제시됐다. 800V 직류버스에 배터리를 연결하면 보다 단순한 변환단계를 통해 수분간 전원공급을 유지할 수 있으며 계통접속점의 피크전력도 낮출 수 있다.

 

효과의 크기는 비교대상 전력구성에 따라 달라진다. 기존 저압 무정전전원장치(UPS) 중심의 전력체계를 중앙집중형 변환장치와 800V 에너지저장체계로 대체하는 비교에서는 100MW 시설 기준 초기투자비가 최대 3,500만달러 감소하고 연간 전력비는 최대 9%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됐다. AI용량을 확대하는 콜로케이션과 네오클라우드가 이러한 전환의 주요 대상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낮은 전력밀도의 클라우드·스토리지 서비스를 운영하는 시설은 교류배전을 수년간 유지할 수 있다. 직류 전환의 시점은 랙 전력밀도가, 경제적 효과의 크기는 기존 전력구성이 좌우한다는 평가다.

 

 

산업시설, 공통 직류망으로 변환손실·피크 저감

자동화 비중이 높은 산업시설은 데이터센터와 함께 직류 적용의 경제성이 높은 분야로 평가됐다. 컨베이어·로봇·자동반송설비 등의 모터를 제어하는 가변주파수드라이브(VFD)는 내부적으로 직류단을 사용한다. 각 장치가 개별적으로 수행하던 교류·직류 변환을 공장 단위의 공통 직류망으로 통합하면 중복 변환단계를 줄일 수 있다.

 

10MW급 자동화 공장 기준모델에서는 초기투자비 약 120만달러, 연간 운영비 약 50만달러의 절감효과가 산출됐다. 배전장치 축소와 구리 사용량 감소, 공간 확보가 초기투자비를 낮췄다. 운영단계에서는 변환손실 저감과 직류연계 배터리를 통한 피크요금 절감이 주요 효과로 나타났으며 설비 감속·제동 시 발생하는 에너지회수도 기여했다.

 

적용효과가 큰 분야로는 자동차 차체 생산라인, 제지·금속 제조시설, 자동화 고층물류시설 등이 제시됐다. 모터구동설비의 비중이 높고 회생에너지 활용 가능성이 크며 전력품질과 공정 연속성이 중요한 시설들이다.

 

지역별 경제성의 중심도 다르다. 독일은 높은 산업용 전력요금에 따른 효율개선 효과가, 미국은 피크요금 절감과 공급안정성 확보가 주요 동인으로 분석됐다. 아시아·태평양에서는 높은 자동화 집약도가 직류 수요를 뒷받침한다. 초기 적용은 전력구성을 처음부터 설계할 수 있는 신축 공장이 중심이 되며 기존 공장은 전력설비 교체주기와 직류기기 가격하락에 맞춰 전환 여건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됐다.

 

공조·승강기·ESS, 건물 직류배전의 핵심 부하

상업용 건물에서는 공조설비와 승강기, 태양광, 배터리, 전기차 충전설비를 연결하는 공통 직류배전망이 핵심으로 제시됐다. 주요 설비를 350V 직류배전망에 연결하면서 임차인이 사용하는 일반 콘센트 부하는 교류로 유지하는 구성이다.

 

태양광·배터리·전기차 충전설비와 LED조명, 모터구동 공조설비 등을 개별 교류회로로 연결할 때 발생하는 변환단계를 줄이는 것이 목적이다. 특히 전기차 충전수요가 증가하는 건물에서는 계통접속용량을 늘리는 대신 현장 배터리를 활용해 전력수요를 관리하는 방안도 경제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분석됐다.

 

연간 약 1GWh의 전력을 소비하는 1만m² 규모 업무용 건물 기준모델에서는 초기투자비 약 4만6,000달러, 연간 운영비 약 2만달러가 절감됐다. 연간 절감액은 전력비의 약 7%에 해당한다.

 

주요 효과는 LED조명·IT설비·공조설비의 전력변환 손실 감소와 직류연계 배터리를 이용한 피크요금 절감에서 발생했다. 태양광 자가소비 확대와 승강기 회생에너지 활용도 추가 절감요인으로 작용했다. 공급안정성이 중요한 병원·연구시설, 에너지소비가 큰 호텔·공항·업무단지, 고출력 전기차 충전거점 등이 우선 적용대상으로 제시됐다.

 

주거용 건물의 경제성은 상업용 건물보다 낮게 평가됐다. 단독주택 기준모델은 태양광·배터리·히트펌프·전기차 충전기를 공통 350V 직류회로에 연결하고 일반 가전용 콘센트는 교류로 유지했다. 연간 약 300달러의 절감효과가 있지만 기존 교류방식보다 높은 초기투자비를 감안하면 현재로서는 개별 가구의 투자타당성이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향후 경제성을 바꿀 변수로는 전기차의 양방향 충전과 시간대별 전력요금 확대가 제시됐다. 전기차 배터리를 주택의 저장자원으로 활용하고 저렴한 시간대에 충전한 전력을 이후에 사용하는 과정에서 충·방전 변환단계가 적은 직류구조의 이점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확산 관건, 표준·인력… 부품에서 통합시스템으로

직류 확대를 가로막는 과제로는 표준의 분절과 전문인력 부족이 지목됐다. 직류는 교류처럼 전류가 자연스럽게 0을 통과하는 시점이 없어 고장전류 차단이 어렵다. 그러나 반도체식·하이브리드 차단기의 발전으로 마이크로초 단위의 고장 차단이 가능해졌으며 저압직류 설비의 안전운전을 위한 국제표준도 확대되고 있다. 남은 과제는 표준화된 보호기술을 폭넓게 적용할 수 있는 가격과 생산규모를 확보하는 것이다.

 

국가·지역별 기준의 성숙도와 요구사항이 서로 달라 한 시장에서 승인받은 기기가 다른 시장에서는 재설계나 재시험, 프로젝트별 승인을 거쳐야 하는 문제도 남아 있다. 직류시스템 설계와 보호협조, 여러 제조사 장비의 통합, 커미셔닝을 수행할 전문인력도 부족하다. 2025년 프라운호퍼와 슈투트가르트대의 독일 제조기업 조사에서는 응답기업의 69%가 표준 부족을 직류 도입의 주요 장애요인으로 지목했으며 기술전문가 부족을 꼽은 비율도 38%에 달했다.

 

BCG는 확산속도를 결정할 요소로 수요와 공급의 동시 확대, 설계·통합 부담 완화, 규제와 표준의 조화, 직류 전문역량 확보를 제시했다. 공통 사양과 기준설계, 제조사 간 상호운용성을 확보하면 프로젝트별 설계부담과 위험을 낮출 수 있다. 이러한 조건은 순차적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병행해 발전하는 구조로 평가됐다.

 

전력·자동화 공급기업의 역할도 개별 부품 공급에서 통합시스템 구축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800V 직류용 전력변환장치, 직류배전반, 배터리 연계 직류버스에 실시간 에너지관리 소프트웨어와 그리드포밍, 디지털트윈, 장기 유지관리서비스를 결합하는 사업구조다. 시장은 하이퍼스케일 AI 인프라에서 자동화 산업시설로, 이후 상업용·주거용 건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됐다.

 

BCG의 관계자는 “향후 2~3년간 이뤄지는 투자와 사양 결정이 다음 10년의 비용구조, 기본 전압체계, 설치표준을 형성할 것”이라며 “하이브리드 전력의 경쟁력이 단순한 전력비 절감을 넘어 제한된 계통용량에서 확보할 수 있는 연산·생산능력과 시설의 공급안정성을 결정하는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