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연구원(원장 김현제)은 지난 9월17일 '개원 40주년 기념 정책세미나'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에너지·기후·번영의 미래를 그리다(Reshaping the Future of Energy, Climate and Prosperity)를 주제로 진행된 이번 세미나는 국내·외 에너지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급변하는 글로벌 에너지환경을 진단하며 지정학적 위기와 기후변화에 대응한 에너지안보 강화·AI시대의 회복력 있고 경쟁력 있는 에너지시스템 구축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세미나는 ‘지정학, 기후변화와 글로벌 에너지시장(Geopolitics, Climate and Global Energy Markets)’을 주제로 한 오전세션과 ‘회복력 있고 경쟁력 있는 에너지시스템 구축(Building Resilient and Competitive Energy Systems)’을 주제로 한 오후세션으로 진행됐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오전세션의 기조연설을 맡아 유럽연합의 러시아산 가스수입 중단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둘러싼 최근의 지정학적 위기에 따른 에너지안보의 중요성을 공유했다.
파티 비롤 IEA 사무총장은 “향후에는 가격뿐만 아니라 공급안정성과 지정학적 위험을 함께 고려한 에너지조달전략이 필요하다”라며 “AI 데이터센터 확대, 전기차 보급 증가, 폭염으로 인한 냉방수요 급증 등으로 세계가 석탄과 석유·가스의 시대를 지나 ‘전기의 시대(Age of Electricity)’로 진입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한국이 전기화를 에너지정책의 중요한 축으로 추진하는 것은 에너지주권 강화, 제조업 경쟁력 제고, 온실가스배출 감축에 기여할 수 있다”라며 “오늘날 글로벌 에너지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석유나 가스, 우라늄이나 리튬이 아닌 신뢰이며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신뢰할 수 있는 교역파트너라는 강점을 바탕으로 글로벌 에너지공급망 재편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에너지안보, 공급망 넘어 시스템 대응 필요
세미나 제1세션에서는 손양훈 인천대학교 명예교수를 좌장으로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글로벌 에너지시장과 기후정책, 공급망 및 에너지안보의 변화를 중점적으로 논의했다.
사카모토 도시유키(Toshiyuki Sakamoto) 일본에너지경제연구소(IEEJ) 전무이사는 ‘글로벌 에너지시장, 기후정책 및 공급망 안보 전망(Outlook for Global Energy Market, Climate Policy and Supply Chain Security)’을 주제로 발표했다.
사카모토 전무이사는“우크라이나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위기 등을 계기로 기존의 에너지정책 목표인 에너지안보·경제성·환경의 ‘3E’ 가운데 에너지안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라며 “화석연료뿐만 아니라 희토류 등 핵심광물의 공급망안정성도 중요한 에너지안보 과제로 부상하고 있으며 공급선 다변화와 비축 확대 등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태의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안보정책연구실장은 ‘물량에서 권리로, 연료에서 시스템으로: 지정학 시대 에너지안보의 재정의’를 주제로 발표했다.
이태의 에너지경제연구원 실장은 “최근 에너지 위기의 핵심 위험이 특정 공급국 자체보다 해협·가공시설 등 공급망의 병목에서 발생하고 있다”라며 “에너지안보의 범위를 석유·가스 등 연료 확보를 넘어 전력망·설비·핵심광물 등 에너지시스템 전반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평상시 확보한 물량이나 공급자 수보다 위기 시 실제 활용가능한 수입권·대체경로·비축·설비 등 실질적인 대응 역량을 중심으로 에너지안보를 평가해야 한다”라며 “평상시의 비용효율성과 위기 시 대응역량 간 격차인 ‘안보 프리미엄’을 정책적으로 명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너지전환·안보 균형 위한 정책수단 논의
이어진 패널토론에서는 △라슬로 바로(László Varró) Shell International 부사장 △김수이 홍익대학교 교수 △김진수 한양대학교 교수 등이 참여해 에너지안보 강화에 필요한 정책수단과 이에 수반되는 비용 등에 대해 논의했다.
라슬로 바로 Shell International 부사장은 “올해 유럽의 폭염에 따른 냉방수요 충족에 가스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라며 “장기적으로는 친환경 에너지시스템으로의 전환이 필요하지만 중기적으로는 에너지원 다변화와 시스템 회복탄력성 강화를 위한 차원에서 가스가 일정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이 홍익대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석유·가스의 도입선과 수송경로를 다변화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전기화와 재생에너지확대를 통해 석유·가스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라며 “또한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해 계시별요금제와 같은 정책수단과 ESS, 유연성 자원, VPP 등 다양한 수단을 종합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수 한양대 교수 “탄소중립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안정적인 핵심광물 공급망 구축이 선결되어야 하며, 단순한 조달선 다변화를 넘어 가공·물류·기술·인력 등 가치사슬 전반의 병목을 관리하는 자원안보 전략과 재활용 산업 육성, 공급망 다변화 비용을 보완할 정책수단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오후세션에서는 에너지경제연구원 40주년을 기념해 △김현제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장 △이한주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이회성 에너지경제연구원 초대원장 △우원식 국회의원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등의 환영사 및 축사 등이 이어졌다.
김현제 원장은 “지난 40년간 국내 에너지여건과 정책환경변화에 따라 연구원이 마주해 온 과제는 달라져 왔지만 객관적인 사실과 전문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에너지정책 수립을 뒷받침하고 국가와 사회가 미래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지식의 토대를 제공하는 연구원의 기본적 책무는 변하지 않았다”라며 “안정적인 에너지공급과 기후변화 대응, 지속적인 번영은 서로 긴밀히 연결된 과제이며 지정학적 불안과 기후위기, AI·디지털 전환에 따른 전력수요 증가에 함께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앞으로도 객관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신뢰할 수 있는 분석과 정책대안을 제시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국내 경제발전을 뒷받침하겠다”고 강조했다.
이한주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은 “오늘 이 자리가 지난 40년을 돌아보는 단순한 회고의 장에 그치지 않길 바란다”라며 “현재 직면한 ‘복합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모색하는 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회성 에너지경제연구원 초대원장은 “에너지전환이 산업의 미래와 분리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라며 “단순히 EU의 탄소중립모델을 따르는 데 그치지 않고 제조업 강국의 특성을 반영한 탄소중립 이행모델과 제도적 설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원식 국회의원은 “석유파동 극복부터 현재의 탄소중립 추진에 이르기까지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라며 “에너지시스템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한 중요한 시기에 국책연구기관으로서 우리나라 에너지정책 수립에 더욱 힘써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최근 네팔의 대규모 빙하 붕괴사례에서 보듯 전 세계 어느 곳도 기후위기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과감한 에너지대전환 없이는 기후위기극복과 지속가능한 번영을 이루기 어렵다”라며 “오늘의 토론이 세계의 기후위기 극복을 앞당기는 실질적인 논의의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최근 중동사태 대응에 힘써준 에너지경제연구원에 감사드린다”라며 “급변하는 에너지환경 속에서 에너지안보와 국가경쟁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연구를 통해 정부와 산업계가 미래를 준비하는 데 지속적으로 기여해 주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AI시대 전력수요 대응…유연한 에너지시스템 필요
세미나 제2세션에서는 조용성 고려대학교 교수를 좌장으로 AI시대에 급증하는 전력수요에 대응하며 탄소중립과 산업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한 에너지시스템의 발전방향을 논의했다.
굴샨 바시스타(Gulshan Vashistha)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 재무전략협력부장은 ‘AI 시대를 위한 전력 공급: 유연한 전력망, 디지털 에너지와 녹색성장’을 주제로 발표했다.
굴샨 바시스타 GGGI 부장은 “AI시대의 데이터센터 전력수요를 단순히 수용해야 할 부하가 아니라 계획·관리하고 유연성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전력수요로 바라봐야 한다”라며 “이를 위해 분산형·양방향 전력망으로의 전환과 △저장장치 △수요반응 △AI기반 예측·제어 등을 활용해 계통의 유연성과 신뢰도를 높이며 청정전력 공급과 산업경쟁력을 동시에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철현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수급통계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AI시대를 위한 전력공급: 지속가능한 데이터센터와 글로벌 AI 경쟁력 확보 전략’을 주제로 발표했다.
김철현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AI 데이터센터의 자발적인 에너지효율향상과 합리적인 수요관리를 유도할 수 있는 제도적기반 마련이 필요하다”라며 “이를 통해 AI 산업의 성장과 안정적인 전력수급을 조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AI에 필요한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Energy for AI’에서 AI를 활용해 발전·전력망·수요를 효율화하는 ‘AI for Energy’로 정책시각을 확대해야 한다”라며 “국내가 강점을 보유한 AI 특화기술과 에너지 AI표준화·금융지원 등을 선택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AI 데이터센터 확대, 전력망 혁신 과제로 부상
2부 패널토론에서는 △나탈리 리만디브라타(Nathalie Limandibhratha) BloombergNEF 선임연구위원 △이승렬 한국전기연구원 차세대전력망연구센터장 △최용옥 중앙대학교 교수 등이 참여해 AI 데이터센터 확대에 따른 전력계통 운영과 전력시장 제도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나탈리 리만디브라타 BloombergNEF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에서도 AI 데이터센터의 약 70%가 10개 주에 집중되는 등 데이터센터 입지가 특정 지역에 편중되면서 지역별 전력부하와 계통접속 부담이 커지고 있다”라며 “데이터센터 건설 속도가 전력망 확충보다 빠른 상황에서 일부 빅테크 기업들이 가스 등 자체 발전원을 활용하면서 에너지전환에서 후퇴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단일 해법보다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시장 참여자를 포괄할 수 있는 종합적이고 조화로운 정책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승렬 한국전기연구원 센터장은 “대규모 AI DC와 재생에너지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수요·발전·송전망을 함께 고려하는 통합계획 마련, 계통안정화 설비 확충, 대규모 부하에 대한 그리드코드 마련, 유연성 자원 확대 등이 필요하다”라며 “HVDC, ESS 등 전력전자기반 설비가 확대되는 미래 전력망에 대응해 AI기반 AC/DC 전력망의 감시·평가·협조제어 기술을 선제적으로 확보함으로써 안정성과 유연성을 동시에 갖춘 차세대 DC 융합 전력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용옥 중앙대 교수는 “AI 수요와 재생에너지 확대 등으로 전력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주변국과 전력망이 연계되지 않은 우리나라의 특성을 고려해 지속적인 수요·공급 전망, 계통서비스의 경쟁적 조달, 동적요금제, AI기반 제어 등을 결합한 전력시장제도 혁신이 필요하다”라며 “이러한 제도와 기술을 선제적으로 발전시킬 때 전력시장혁신 자체가 산업경쟁력의 원천이 되며 저장장치 최적화·계통운영 소프트웨어 등의 해외진출기반으로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정책세미나의 에너지경제연구원 공식 유튜브에 공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