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와 LG전자의 AI 데이터센터사업이 냉각장비 공급을 넘어 시스템 통합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플랙트그룹 인수 이후 글로벌 생산·서비스 기반을 삼성의 제조·제어기술과 결합하고 있다. LG전자는 기존 칠러사업을 칩 직접냉각과 냉각수 분배장치(CDU)로 확장하면서 엔비디아 검증, 외부기업과의 기술협력, 계열사 공동사업을 통해 공급범위를 넓히고 있다.
삼성전자는 9월21일 광주사업장에서 플랙트그룹 HVAC 생산라인을 착공했다. LG전자는 9월22일 대용량 CDU가 엔비디아 DSX 레퍼런스 설계요건을 충족했다고 발표했다. 삼성은 인수한 사업의 생산기반을 국내로 확장하고 있으며 LG는 개발한 냉각제품이 글로벌 AI 인프라 설계·조달체계에 진입할 수 있는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 글로벌 공조사업 결합-LG, 독립사업본부 중심 확장
삼성전자의 AI 데이터센터사업은 반도체와 냉각인프라를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DS부문은 HBM·서버용 D램·기업용 SSD 등으로 AI 인프라 수요에 대응한다. 반면 냉각인프라는 DA사업부의 HVAC 조직과 플랙트그룹이 중심이다. 같은 회사가 메모리와 냉각기술을 보유한다는 사실과 이들을 하나의 데이터센터 공급계약으로 통합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양사 간 직접적인 경쟁이 확대되는 영역은 냉각설비와 그에 연결되는 제어·서비스다.
삼성의 냉각사업은 기존 공조조직에 글로벌 중앙공조 전문기업을 결합하는 구조다. 삼성전자는 2025년 11월 플랙트그룹 인수를 완료했으며 플랙트그룹이 축적해 온 데이터센터 냉각기술, 제조시설, 현장 서비스 인력을 확보했다. 플랙트그룹코리아 대표를 삼성전자 DA사업부 HVAC사업팀장이 맡는 체계도 구축했다. 인수기업을 별도 투자자산으로 보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삼성의 공조사업과 연결하는 형태다.
LG전자는 ES사업본부를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한다. 2026년 조직개편에서는 데이터센터 냉각·환기·냉동·원전 관련 HVAC 솔루션을 담당하는 어플라이드사업담당을 신설하고 ES M&A담당과 ES해외영업담당도 마련했다. 제품개발뿐만 아니라 인수합병과 해외사업 실행기능을 사업본부 안에서 강화한 것이다.
삼성은 이미 구축된 글로벌 공조사업을 인수해 자사 역량과 통합하는 방식을, LG는 기존 핵심기술을 확장하면서 필요한 사업역량을 내부조직·제휴·인수합병으로 보강하는 방식으로 정리된다. LG 역시 자체개발만을 고집하는 구조는 아니다. LG전자는 자체역량 확보, 협력, 인수합병을 병행하는 ‘Build·Borrow·Buy’ 전략을 공식화했다.
삼성, 플랙트 기술·고객기반 제조·서비스 결합
플랙트그룹 인수 의미는 제품군 추가보다 넓다. 플랙트그룹은 1964년 전산실용 냉방장치를 선보인 이후 데이터센터 냉각분야에서 사업을 전개해 왔다. 삼성은 이를 통해 공조장비뿐만 아니라 현장 적용경험과 서비스 기반을 확보했다. 신규 진입기업이 제품개발 이후 별도로 축적해야 하는 설계 대응과 고객지원 역량을 함께 확보한 셈이다.
이 기반을 확대하는 수단이 생산투자다. 삼성전자가 착공한 광주 생산라인에는 약 2,400억원이 투입된다. 연면적 2만1,800m² 규모로 조성하며 2028년 초 본격 가동할 예정이다. 생산품목은 CDU와 팬월유닛(FWU), 컴퓨터룸 공기처리장치(CRAH), 공기조화기(AHU) 등이다. 국내와 동아시아 AI 데이터센터를 비롯해 첨단 제조시설·상업용 시설을 대상으로 개발부터 생산·설치·유지관리까지 연결하는 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광주 생산라인은 구축 단계인 반면 인도 푸네에서는 지난 8월 신규 생산라인을 준공하고 양산체계를 마련했다. 푸네 생산시설은 기존 노이다시설과 함께 인도·아시아태평양 공급을 담당하며 완전 가동 시 연간 최대 6,500대의 HVAC장비를 생산할 수 있다. 생산품목은 AHU·FWU·CRAH 등이다.
삼성의 전략은 글로벌 공조기술을 국내에 들여와 판매하는 수준을 넘어 지역별 생산과 공급을 확대하는 데 있다. 플랙트그룹의 기술·현장경험에 삼성의 제조기반을 결합해 납기와 고객 대응력을 높이려는 것이다. 광주투자는 국내 공급기반을, 푸네투자는 인도·아시아태평양 시장 대응력을 강화하는 성격이다.
김철기 삼성전자 DA사업부장 부사장은 광주 생산라인 구축 발표에서 “이번 광주 생산라인 구축은 차별화된 HVAC사업 경쟁력을 확보하는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LG, 칠러에서 칩까지 냉각범위 확대
LG전자는 칠러와 압축기·인버터·제어기술을 기반으로 서버에 가까운 영역까지 사업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핵심은 칩에서 발생한 열을 콜드플레이트로 회수하고 CDU를 거쳐 시설 냉각설비로 전달하는 ‘칩투칠러(Chip-to-Chiller)’다. 개별 칠러 공급에서 냉각계통 전체의 구성과 운전으로 사업범위를 넓히는 전략이다.
이 과정에서 엔비디아 검증은 기술개발과 사업화를 연결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LG전자는 7월 600kW CDU가 냉각성능·신뢰성·장애전환 등 100개 이상의 엔비디아 기술평가 항목을 충족했다고 발표했다. 평택 검증시설에서는 칩 부하와 콜드플레이트, CDU, 칠러를 연결해 과도응답과 온도변화, 저부하 안정성을 시험하고 있다. 장비 한 대의 정격성능보다 냉각계통 전체의 동작을 검증하는 방향이다.
9월22일 발표에서는 600kW·1MW·2.6MW CDU의 인프라 검증을 완료했으며 2.6MW 모델은 추가 요건을 충족해 ‘NVIDIA DSX Ready CDU’ 자격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해당 제품은 엔비디아 DSX AI Factory Marketplace에도 등재됐다. 글로벌 AI 인프라 공급체계에서 제품을 검토하고 채택하는 과정에 진입할 수 있는 접점을 확보한 것이다.
시설측 냉각제품도 강화하고 있다. LG전자는 9월21일 AI 데이터센터용 공랭식 터보칠러를 공개했다. 자체 오일프리 자기베어링 압축기와 냉매 프리쿨링 기술을 적용하고 공장 사전제작 방식의 모듈형 수배관 냉각솔루션도 제시했다. CDU 확대와 동시에 기존 칠러사업의 경쟁력을 높여 칩측 냉각과 시설측 열관리를 연결하는 방식이다.
삼성의 최근 생산투자가 CDU와 룸 공조장비를 함께 확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LG는 콜드플레이트까지 포함한 열전달 경로를 명시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삼성은 공랭, LG는 액체냉각’으로 나눌 수는 없다. 삼성도 CDU를 핵심 생산품목으로 선정했으며 LG도 CRAH·칠러 등 공기냉각과 시설 냉각장비를 함께 공급한다. 양사 모두 여러 냉각방식이 공존하는 데이터센터를 겨냥하고 있다.
LG 확장수단, ‘원 LG’와 외부기업 협력
LG의 사업구조에서 또 다른 특징은 냉각 이외의 역량을 계열사와 외부기업을 통해 결합한다는 점이다.
‘원 LG 솔루션’은 LG전자의 열관리기술, LG CNS의 데이터센터 설계·구축·운영 역량,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기술을 연결하는 구조다. 냉각·전력·운영을 함께 제시하지만 모든 기능을 LG전자 단독사업으로 수행하는 방식은 아니다. 각 회사의 전문영역을 프로젝트 단위로 결합하는 공동사업 모델이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프로젝트는 이러한 구조가 적용된 사례다. LG전자는 LG CNS와 시나르마스그룹의 합작사인 LG 시나르마스 테크놀로지 솔루션이 추진하는 데이터센터에 칠러와 CRAH·AHU·CRAC·FWU, 맞춤형 빌딩관리시스템을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건설·구축사업과 냉각설비 공급이 연결되면서 LG전자가 참여하는 범위도 개별 장비에서 통합 열관리 패키지로 확대됐다.
외부기업과의 협력도 같은 방향이다. LG전자는 2025년 11월 플렉스(Flex)와 통합 모듈형 냉각솔루션 공동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LG의 칠러·CDU·공조·열관리 솔루션에 플렉스의 액체냉각·전력·IT 인프라 역량을 결합하는 내용이다. 사전제작과 모듈화를 통해 구축을 단순화하고 증설에 대응하는 것이 협력의 목적이다.
액침냉각에서는 GRC의 탱크기술과 SK엔무브의 냉각유기술을 결합하고 있다. LG가 모든 구성요소를 직접 보유하기보다 핵심 냉각장비와 제어를 중심에 두고 주변 기술을 전문기업과 연결하는 구조임을 보여준다.
삼성이 플랙트그룹 인수를 통해 공조 전문역량을 소유·통제하는 범위를 넓혔다면 LG는 자체제품을 중심으로 여러 기업의 역량이 결합되는 범위를 넓히고 있다. 전자는 조직·제품·공급망의 통합이, 후자는 파트너 간 기술규격과 사업수행체계의 정합성이 중요한 실행과제가 된다.
제어·운영으로 확대되는 사업영역
양사의 공통된 방향은 장비 판매 이후의 운영영역을 확보하는 것이다. 차이는 통합의 출발점에 있다.
삼성전자는 플랙트그룹의 중앙공조기술에 스마트싱스 프로와 빌딩 통합솔루션 b.IoT를 결합할 계획이다. 플랙트그룹도 CDU 기술과 자체 스마트 제어플랫폼인 플랙트엣지(FläktEdge)를 주요 투자영역으로 제시했다. 공조장비와 건물측 설비를 연결하고 에너지관리·유지보수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이다.
LG전자는 데이터센터 냉각관리 소프트웨어인 DCCM을 통해 CDU·CRAH·공랭식 칠러를 통합 모니터링·제어하는 체계를 제시했다. 이상 조기감지와 가상센서 기반 진단, 예지보전, IT부하에 따른 최적운전이 주요 기능이다. LG NOVA에서 출발한 PADO의 AI 워크로드 조정 플랫폼도 공개해 냉각장비 운전뿐만 아니라 IT작업 배분과 전력사용을 연계하는 방향을 드러냈다.
전력분야에서는 LS일렉트릭·LS전선·LG에너지솔루션과 직류배전 솔루션을 공동개발했다. 냉각장비를 전력인프라와 연결하는 방식으로, LG전자 혼자 데이터센터 전력설비 전체를 제조하는 구조와는 다르다. LG전자 ES사업본부는 4월 DCW2026 발표에서 “AI 데이터센터는 첨단 냉각기술뿐 아니라 전력과 운영의 긴밀한 통합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업적으로 제어영역 확대는 장비 판매 이후 고객과의 접점을 지속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장비 상태를 진단하고 운전조건을 조정하며 유지보수와 성능개선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후속사업 기회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삼성의 연결 플랫폼과 LG의 냉각관리·워크로드 연계전략은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이러한 운영영역을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경쟁의 다음 단계는 ‘통합의 실행력’
삼성과 LG는 서로 다른 경로로 AI 데이터센터 냉각사업을 확대하고 있지만 지향점은 가까워지고 있다. 삼성은 플랙트그룹의 기술·고객·서비스 기반에 제조와 연결 플랫폼을 결합한다. LG는 칠러 중심의 핵심기술을 칩측 냉각으로 확장하고 엔비디아 검증, 계열사 공동사업, 외부기업 협력을 통해 프로젝트 참여범위를 넓힌다.
이러한 구조에서 삼성의 실행과제는 인수한 사업의 제품·제어·공급망을 삼성의 기존 체계와 얼마나 효과적으로 결합하느냐다. LG의 실행과제는 여러 기업이 참여하는 솔루션을 반복 적용 가능한 설계와 명확한 역할분담으로 얼마나 정착시키느냐다. 전자는 인수 이후 통합성과가, 후자는 협력체계의 프로젝트 수행성과가 사업확장의 속도를 결정하게 된다.
국내 냉각·설비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개별 제품경쟁에 머물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장비와 제어가 패키지로 제안되는 사업이 확대되면 배관·펌프·밸브·수처리·누수감지 등 주변 설비 역시 전체 냉각계통과의 호환성, 시운전, 장애대응 측면에서 함께 평가받게 된다. 냉각장비 공급사와 설계·시공·커미셔닝 기업 사이의 역할분담도 중요해진다.
결국 삼성과 LG의 AI 데이터센터 경쟁을 가를 것은 보유 제품의 숫자가 아니라 연결된 시스템의 완성도다. 냉각장비를 공급하는 데서 나아가 정해진 납기 안에 설치하고 변동하는 AI부하에 대응하며 운영기간 동안 성능과 신뢰성을 유지하는 능력이 사업가치를 결정한다. 플랙트를 중심으로 공급체계를 내재화하는 삼성과 칩투칠러를 중심으로 협력범위를 확장하는 LG 모두 이제 통합의 구상보다 현장의 실행성과를 축적하는 단계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