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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환기장치 제한입찰 특혜’ 의혹

납품기일 2년여 앞서 입찰…A기업 ‘싹쓸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열회수형 환기장치 발주과정에서 특정업체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LH는 2년여 후 납기예정인 공동주택 및 공공건물 공기순환기(열회수형 환기장치) 발주를 제한입찰로 공고했다. 이는 납기 수개월 전 총액입찰로 발주하던 통상적인 절차와 다른 것으로 입찰공고 후 부당하게 업체선정까지 이뤄지면서 특정기업이 물량을 싹쓸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공고된 7건의 공사에서 LH가 구매예정인 공기순환기 물량은 5,471대로 총 21억3,685만여원어치다.

LH는 매립덕트형 50CMH, 100CMH 제품을 대상으로 한 해당 공고에서 기존 옵션항목인 일체형제어기(룸컨트롤러, 리모컨)를 필수항목으로 포함하는 등의 방식을 활용해 입찰참가를 제한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찰결과 A기업이 6곳, B기업이 1곳에서 계약기업으로 선정됐다. 특히 입찰당시 조달청 나라장터종합쇼핑몰에 등록된 B사 매립덕트형 50CMH, 100CMH 제품모델의 경우 일체형제어기가 포함돼 있지 않은데도 제안입찰 참여 혜택을 부여해 특혜의혹을 촉발했다.

업계는 LH가 2개 업체에게만 특혜를 부여해 이들 기업이 번갈아 계약하도록 하는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었다고 반발하고 있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계약체결권자 또는 담당자는 필요에 따라 △특정금액 이상 공사 △특수한 기술·공법이 요구되는 공사 △특수한 설비·기술이 요구되는 물품제조계약 △특수한 성능·품질이 요구되는 경우 해당 인증제품 등 여부에 따라 입찰참가자격을 제한할 수 있다.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으로 지정된 열회수형 환기장치의 경우 ‘추정가격이 1억원 이상인 물품의 제조·구매 또는 용역’의 경우에 해당돼 중소기업자를 대상으로 제한입찰을 할 수 있다.

LH의 관계자에 따르면 “1억원 이상의 제품을 다수공급자 물품(MAS 2단계)으로 구매할 때 제한공고를 통해 구매해야 하지만 이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조달청 나라장터 등재기업이 2곳 이상어야 한다”라며 “기존에는 해당 조건에 만족하는 기업이 B기업 1곳뿐이어서 총액입찰로 진행해왔지만 최근 A기업이 해당 조건을 만족했으므로 나라장터 우선구매 규제에 따라 제한공고를 통해 입찰을 진행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법령은 계약체결 시 일반경쟁 총액입찰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특수한 경우 제한입찰을 허용하는 것으로 이번 사례가 제한입찰을 해야할 불가피한 경우인지에 대해 업계는 납득이 어렵다고 표현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당시 조달청 나라장터에 50~100CMH 매립덕트형 모델에 일체형제어기가 포함되지 않은 기업에 특혜를 주면서까지 제한입찰을 강행해야 할 급박한 경우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업계는 풍량을 낮추는 정도 수준에 불과한 제품을 만들거나 기존 판매조건을 변경하는 수준의 조치는 시간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데도 일반경쟁 총액입찰이 아닌 제한입찰로 진행한 것은 공정한 경쟁체계를 해친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조달청 등록제품 중 A사 제품만이 규격서에 제어기일체로 돼있었으며 B사는 매립덕트형 50CMH, 100CMH와는 다른 모델의 본체에 일체형제어기가 포함된 것”이라며 “사실상 1개기업만이 입찰에서 요구하는 규격에 만족하므로 다수공급자(MAS2단계) 제한입찰 조건이 불가했다”고 지적했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기존에 수요가 적어 제품모델이 마련되지 않은 매립덕트형 50~100CMH 용량의 제품을 요구하면서 제한입찰로 1주일만에 업체선정을 마무리 짓는 것은 공정한 경쟁체계가 아니다”라며 “특정풍량대 제품모델을 만드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으므로 규격을 공개한 뒤 기존대로 납품일자의 여유를 갖고 총액입찰하는 방식으로 추진한다면 기업마다 판단해 입찰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일체형제어기를 필수항목에 포함한 것과 관련해서도 조달청 옵션항목으로 이미 리모컨이 있는 만큼 입찰에 참가하기 위해 이를 기본항목으로 포함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다”라며 “그러나 옵션항목을 기본항목으로 변경하기 위해 조달청의 절차를 거쳐야 해 수개월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제한입찰에 응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다”고 토로했다.

이에 따라 납품기일이 입찰공고일로부터 2년여 후이기 때문에 시급성이 낮은데도 많은 기업들이 입찰에 참여할 수 없도록 급하게 진행한 LH의 조치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LH 퇴직자가 산하기업에 재취업해 관련절차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불거지는 가운데 이번 입찰참가기업에도 LH출신이 포진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러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이러한 납품기일대비 빠른 입찰공고에 따라 소비자의 피해도 우려된다. 최근 정부는 열회수형 환기장치에 대한 미세먼지 포집능력, 필터, 센서 등의 기준을 강화했다. 개정된 KS B 6879(열회수형 환기장치)는 지난 4월 시행됐지만 이보다 앞서 선정된 이번 LH 입찰공고 대상 현장의 경우 준공일이 2022~2023년임에도 강화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제품이 도입될 우려가 있다.

이에 따라 공기업인 LH가 환기, 미세먼지, 에너지절감 성능향상을 통한 국민건강·기후변화 대응력 강화, 기업간 공정경쟁 생태계 조성 등 정부정책 취지에 역행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