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7일부터 11일까지 태국 방콕에서 개최된 UN 국제협약인 몬트리올의정서(Montreal Protocol)의 개방형 정부간 실무그룹 (Open-ended Working Group, OEWG) 회의에 옵저버 (Observer) 신분으로 참석했다. 실무그룹 회의는 2025년 11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릴 몬트리올의정서 37번째 총회를 준비하기 위해 개최되는 실무자 회의다.
1987년 제정된 몬트리올 의정서는 프레온가스로 인한 오존층 파괴를 성공적으로 막아내 환경분야에서 가장 성공적인 국제협약으로 손꼽힌다. 현재는 프레온가스를 대체한 HCFC, 그리고 2016년부터는 HFC계열 물질을 국제사회의 합의로 감축대상에 추가해 현재는 국가별로 단계적 감축활동이 진행 중이다.
몬트리올의정서는 UN 국제협약 중 유일하게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의 비준을 이끌어낸 협약으로 UN회원국 전원이 참여하고 있다. 이번 실무그룹 회의의 의장국은 호주와 카리브해 국가인 바베이도스였고 총 151개국 대표단이 참석했다. 실무그룹 회의는 유엔환경계획(UNEP) 산하 오존층 사무국(Ozone Secretariat)에서 제안한 안건을 중심으로 5일간 진행됐다.
냉매 전주기 관리, 냉매 온실가스 배출 '감축수단 인정' 시작
이번 실무그룹 회의 안건 중 유독 눈에 띈 안건은 냉매의 전주기 관리체계(LRM: Lifecycle Refrigerant Management)였다. HFC계열 물질은 소화약제, 건축용 발포제, 용매에도 쓰이나 총소비량으로 볼 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HVAC&R업계에 사용되는 냉매다. HFC계열 물질이 CO₂ 대비 최대 수만배에 달하는 초강력 온실가스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HFC뿐만 아니라 다른 비CO₂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기술 및 관리체계가 기후변화 대응·지속가능발전 차원에서 국제사회에서 활발하게 다뤄지고 있는 추세다.
LRM이 주목받는 이유는 냉매회수, 재활용, 그리고 안전폐기 함으로써 사용하고 난 잔류냉매가 대기로 유출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HFC계열 물질이 점차 생산·소비 쿼터제로 인해 축소되면서 앞으로 유지보수 차원에서 부족한 공급을 대체할 수 있는 수단으로 쓰일 수도 있다. 이와 함께 정확한 냉매충전량 및 폐기량을 파악할 수 있어 국가 온실가스 통계체계 고도화에 기여할 수도 있다.
현재까지 냉동공조용 냉매가 주로 일회성으로 수입·생산→유통→판매에서 멈추는 선형방식의 공급망 위주였다면 현재 진행 중인 냉매 전주기 관리체계에 관한 논의는 수입·생산→유통→판매→유지·보수→회수→정제→재판매·사용에 이르기까지 순환형태의 공급망을 갖춘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냉매회수·재생냉매 전문기업 다수 참여… 일본기업, 정부합동 부대행사 진행
여태까지 HVAC&R업계가 주로 냉매생산·공급시장에 초점을 맞춰 성장했다면 앞으로는 또다른 국제적 화두인 순환경제(Circular Economy)산업 전환의 일환으로 냉매의 성공적 회수·재활용·재생냉매 공급에도 포커스를 둔 기업이 점차 업계리더로 주목받는 형태로 진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 이상 사용이 불가능한 냉매의 안전폐기 역시 대기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하는 방법으로 여러 국가의 주목을 받는 분위기였다.
특히 △트레인 테크놀로지스(Trane Technologies, 미국) △A-Gas(영국)는 친환경냉동공조산업협회(ARAP: Alliance for Responsible Atmospheric Policy, 미국)이 주최한 부대행사에도 참여해 냉매회수·재생냉매산업에 대한 현황과 비즈니스 사례를 각각 공유했고 기술적 및 재정적 장애물, 재생냉매시장 활성화를 위한 정책방안 등에 대해 토론을 진행했다.
트레인 테크놀로지스의 경우 생산·판매뿐만 아니라 제품 및 냉매회수·재활용, 그리고 재생냉매 생산·판매, 마지막으로 안전폐기까지 기업이 자체적으로 수행하고 관리하는 자발적인 생산자책임재활용(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을 통해 국제적 친환경기업으로서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음을 확인했다.
일본냉동공조협회(JRAIA)도 자체 부대행사를 주최했다. 부대행사 발제자로 다이킨(Daikin) 등 일본 냉동공조업계 선도기업들이 다수 참여했으며 일본 환경성(MOE Japan) 산하 IFL(Initiative on Fluorocarbons Life Cycle Management)과 일본 경제산업성(METI Japan)의 협업 하에 행사가 진행됐다. 주요내용으로 일본 산업계의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국내 불소화합물 감축과제, HFCs 감축일정에 발맞춰 냉매 회수율을 끌어올리는 정책방안, 냉매 전주기 관리체계를 산업계 탄소중립 로드맵에 연계시키는 방법 등이 참석한 국가 대표단 여러 명에게 공유됐다.
국내기업 존재감 ‘0’… 폐냉매 정제·재생 우수기업 양성·홍보 필요
국제환경협약 중 제일 잘 알려진 협약은 두말할 것 없이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이다.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약 체결 이후 UNFCCC 당사국총회(COP: Conference of Parties) 참가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23년 두바이에서 열렸던 COP28은 총 8만6,000명의 정부·기업·시민사회 관계자의 참가를 끌어내는 신기록을 달성했다. 이중 민간기업의 국제환경협약 참여도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재생에너지 및 산업의 지속가능 전환, 선도적인 ESG 정책동향을 살피기에 국제환경협약 총회만큼 좋은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1987년 제정된 몬트리올 의정서는 국제환경협약 중 가장 오래된 환경협약이기도 하지만 지구상 모든 국가의 비준을 이끌어 가장 성공적인 협약으로도 손꼽히고 있다. 몬트리올의정서 개정안인 2016년 키갈리개정서에 기후위기 대응의 일환으로 HFCs 물질이 추가됐으며 몬트리올 의정서와 기후변화협약의 연관성이 한층 깊어지는 계기가 됐다. 친환경·ESG정책 및 기술동향을 예의주시하는 기업들이 몬트리올의정서 회의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이번 몬트리올의정서 실무회의에서 우리나라 냉동공조업계 관계자는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가 전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냉동공조기기 생산·수출국인 사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대한민국의 존재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총 151개국에서 온 국가관계자가 참여한 자리에서 우리나라가 보유한 기술력을 적극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다.
기업 친환경전환이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시대적 과제이자 필수사항이 된 만큼 우리나라 기업은 소극적으로 다른 나라의 동향을 관찰만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와 선제적인 기여를 통해 국제사회의 대화를 이끌어 나가고 전세계 10위권 냉동공조기기 강국에 걸맞은 리더십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우수한 폐냉매 정제·재생기술 및 전주기 냉매관리체계를 선도하는 기업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앞으로 냉매 전주기 관리정책이 개선되고 재생냉매시장 활성화를 통해 언젠가 국내기업이 국제환경협약이라는 국제무대에서 냉매 전주기 관리기술력 및 인프라 성공사례를 널리 알리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박범철 기후솔루션 HFCs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