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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이태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보이지 않는 시장의 손이 마비된 이유

‘모든 아이들에게는 우유를 마실 권리가 있다’ 치솟는 생필품가격에 따른 서민층 불만을 누그러뜨리고자 위정자는 ‘반값 우유’정책을 시행했다. 우유가격만 통제하면 된다는 단순한 판단의 결과다. 정책을 따르지 않으면 처벌하겠다며 우유 생산업자를 협박키도 했다. 이후 시장은 어떻게 됐을까? 위정자의 생각과는 반대로 업자들은 생산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반값에 우유를 파느니 차라리 사업을 포기하겠다며 젖소를 도축해 시장에 내다 팔기 시작했고 이후 우유는 오히려 더 부족해졌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당연한 결과다.

당황한 위정자는 다시 사료인 건초가격을 통제하는 카드를 집어들었다. 그러자 건초 생산업자들이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건초의 생산을 중단하거나 불태워버렸다. 공급이 부족해지자 건초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우유가격을 내려 민심을 얻으려던 집권자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가격이 폭등해 서민분노가 극에 달하게 됐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으로 루이16세를 단두대에서 처형하고 공포정치를 시행했던 집권 급진정당 당수 로베스피에르의 일화다. 정부의 보이는 손이 시장에 개입해 실패한 사례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정부의 시장개입 당위성과 효과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부동산 가격안정을 위한 신도시건설과 금융규제 대책, 최저임금 인상과 카드수수료율 논란에 이어 최근 신종 바이러스에 대응한 마스크 대란까지 시장의 조력자냐 교란자냐를 놓고 극명하게 대립하고 있는 양상이다.

정부는 시장지배력이 높은 독과점기업의 불공정 거래행위로 시장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자유 시장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직간접적으로 시장에 개입한다. 기업이 부당하게 가격을 인상하거나 생산량을 줄이면 이를 직접 규제하기도 하고 법을 통해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키도 한다.

소비자에게 꼭 필요한 재화나 서비스지만 막대한 자본투입이 요구되거나 사업성격상 독점적일 수밖에 없는 경우 또는 공공재와 같이 시장이 형성되지 않는 경우에는 국민복지나 국가발전을 위해 정부가 직접 시장에 참여하기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경제주체는 상품의 생산과 소비과정에서 자신들의 이익과 비용만을 고려하는데 이때 제3자에게 의도치 않게 영향을 미치지만 경제활동 과정에서 고려되지 않는 요소인 소위 외부효과의 반영을 위해 정부가 강제를 행사하기도 한다.

개인의 편익에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긍정적 외부효과를 도모하기도 하고 벌금과 같은 법적규제를 가함으로써 발생되는 부정적 외부효과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부과하기도 한다. 정부의 시장개입은 결국 과다생산 문제를 해결하고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도모한다는 선의에 있다.

이 대목에서 의문이 든다. 시장이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때 보이지 않은 손이 제대로 작동되게 하려면 보이는 손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앞의 예에서 보듯 선의에 의한 정부의 시장개입이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를 우리는 매우 흔히 봐왔다. 공공건물에 대한 건물에너지관리시스템의 의무설치 제도도 그 좋은 예다.

4년 전쯤일까. 일정규모 이상의 공공건물에 시스템설치를 의무화하기 위한 자문회의 자리로 기억한다. 아직 기술적으로 소비자를 만족할만한 제품이 없어 시기상조이니 수요에 부응할 수 있는 제품개발이 우선이라는 주장을 했지만 이미 정부에서 시책을 선언했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다는 답변만 되돌아왔다. 과거 정부가 전자산업에 투자했기 때문에 오늘날 글로벌기업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무용담과 함께. 하지만 불과 3년이 지난 지금 현장에서는 당초의 목적을 담보하기는커녕 운용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음을 토로하고 있다.

시장에는 성과를 측정하는 분명한 기준이 있다. 효율적인 기업은 이윤과 함께 성공하지만 비효율적인 기업은 손실과 함께 시장에서 퇴출되는 게 다반사다. 하지만 공공부문에는 시장과 같이 효율성을 측정하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게 문제다. 공공부문의 성과지표는 이윤이나 손실처럼 분명하지 못하고 일관된 하나의 지표로 나타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결과에 대한 책임 소재도 불분명하다. 그러다보니 관료들은 효율성을 올리기보다 자신의 권한을 확대하려는 정치적 게임에 더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요즘 모두가 4차산업혁명을 얘기한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라는 시대적 관점에서는 매우 혼란스런 개념이다. 하지만 소비자를 위한 맞춤형 생산과 소비체계 관점에서는 이해가 쉽다. 

그 선봉에 건물에너지관리시스템이 있다. 공공건물에 설치를 의무화하면 수요가 늘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산업이 발전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하드웨어 중심의 패키지 제품에서 벗어난 소프트웨어 중심의 맞춤형 지식정보 서비스산업이기 때문이다. 맹목적 희망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정부의 보이는 손은 자칫 프리드먼이 말한 샤워실의 바보의 손이 될 공산이 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