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타이베이에서 5월21일 열린 컴퓨텍스 2025(COMPUTEX 2025)의 부대행사로 마련된 포럼에서 판카지 샤르마(Pankaj Sharma) 슈나이더 일렉트릭(Schneider Electric) 시큐어파워사업부 글로벌 총괄(부사장)이 ‘AI시대의 데이터센터(DC) 인프라전략’을 주제로 발표했다. 이번 발표는 폭증하는 데이터처리 수요와 이를 뒷받침할 전력·냉각인프라의 한계,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적·산업적 대응 방안을 집중 조명했다.
샤르마 부사장은 생성형 AI(Gen-AI)의 폭발적 성장 속도를 언급하며 “생성형 AI는 도입 두 달만에 1억명 사용자를 확보했는데 이는 월드와이드웹(www)이 같은 숫자에 도달하기까지 7년이 걸린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라며 AI가 데이터와 연산인프라에 미치는 파급력을 강조했다.
실제로 골드만삭스는 생성형 AI시장규모가 2032년까지 약 1조3,000억달러(약 1,798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며 2025년 상반기에만 민간투자금이 600억달러(약 830조원)를 상회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 같은 기술발전은 막대한 전력소비를 수반한다. 슈나이더가 제시한 분석에 따르면 AI 도입 시나리오에 따라 2035년까지 DC 전력소비는 4배까지 증가할 수 있으며 이는 AI 도입패턴과 효율화 전략에 따라 달라진다.
샤르마는 “AI기술 자체가 에너지 집약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AI 기반 DC 전력수요가 향후 전 세계 전력망의 지속가능성에 심각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AI가 에너지소비의 원인이면서도 동시에 에너지효율화를 위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AI 기반 HVAC(냉난방공조)시스템을 교육기관에 적용한 결과 4년간 전력소비는 8.9%, 지역난방사용은 3.1% 감소했으며 약 260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저감 효과를 거뒀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Energy for AI’뿐만 아니라 ‘AI for Energy’라는 관점에서의 접근이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고성능 컴퓨팅(HPC) 수요증가는 DC설계의 근본적 재편을 요구하고 있다.
샤르마는 “기존 DC는 랙당 15~20kW 수준을 기준으로 설계됐지만 AI 팩토리 환경에서는 70~100kW, 일부는 1,000kW에 달하는 고밀도 전력 설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슈나이더는 엔비디아(NVIDIA)와 협업해 최대 랙당 132kW/rack까지 지원 가능한 AI 레퍼런스 아키텍처를 개발하고 있으며 향후 800V DC 기반 차세대 전력인프라도 준비 중이다.
냉각기술도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기존 공랭(Air Cooling) 방식으로는 초고밀도 컴퓨팅에서 발생하는 열을 감당할 수 없어 수랭(Liquid Cooling) 방식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슈나이더는 최근 미국의 수랭 전문기업 모티브에어를 인수, 냉각유닛(CDU), 고온칠러(High-Temperature Chiller), 혼합 냉각기술 등을 통해 칩에서 발생하는 열을 외부로 효율적으로 배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샤르마 부사장은 “전력망부터 칩, 그리고 냉각시스템까지의 전체 흐름을 최적화하는 ‘그리드 투 칩(Grid to Chip)’, ‘칩 투 칠러(Chip to Chiller)’ 개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UPS, 고전압 스위치기어, 고밀도 랙 및 에어컨테인먼트 등 각 요소기술이 지속가능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도록 설계돼야 하며 수랭식시스템 또한 단순히 도입에 그치지 않고 운영효율, 유지관리 편의성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통합을 통해 실질적 에너지절감도 가능하다. 슈나이더 일렉트릭이 발간한 백서(White Paper)에 따르면 가속화된 컴퓨팅 아키텍처와 고효율 전력·냉각인프라를 적용할 경우 DC 에너지수요 곡선을 최대 17%까지 굴절시킬 수 있다. 나아가 전력망 외부에서 자체전력을 확보하는 개념인 ‘비하인드 더 미터(Behind-the-Meter)’ 전략까지 포함하면 절감 폭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사례도 공유됐다. 샤르마는 영국의 암 연구기관인 웰컴 생거 연구소(Wellcome Sanger Institute)와 NVIDIA의 협력사례를 소개하며 “가속컴퓨팅을 활용해 유전체 분석속도는 1.6배 빨라지며 비용은 24배 감소했고 에너지소비도 42배 줄었다”고 밝혔다.
이처럼 AI와 효율적 물리인프라의 결합이 경제성과 지속가능성 모두에서 큰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입증했다.
이어 샤르마 부사장은 “기술기업, 인프라기업, 학계, 미디어 모두가 협력해 에너지-데이터 균형을 재정립해야 한다”라며 “AI시대의 인프라는 더 빠르고 더 밀집되고 더 지속가능해야 하며 AI를 위한 에너지(Energy for AI)뿐만 아니라, 에너지를 위한 AI(AI for Energy) 역시 동등하게 다뤄져야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슈나이더의 발표는 AI 혁신의 근간이 되는 물리적 인프라, 특히 전력과 냉각시스템의 전략적 중요성을 재조명하며 기술과 지속가능성의 접점을 설계하는 산업계의 새로운 과제를 던졌다. 단순한 기술진보를 넘어서 이를 담아낼 인프라의 정교한 설계와 산업 간 협력이 AI시대의 지속가능한 성장의 열쇠임이 강조됐다.